북미간에 회담합의 내용이 발표되었지만 북한이 합의한 약속을 지킬지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북한이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와 이후 2005년 9·19 공동선언을 포함한 6자회담의 여러 합의를 번번이 깨고 ‘핵보유국’을 선언한 상습범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의 대규모 영양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핵 관련 활동 중단을 약속한 것은 2008년 12월 6자회담 중단 이후 악화한 북핵 문제를 대화의 테이블 위에 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이 집권 2개월 만에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우라늄 농축 중단을 약속해 일말의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실천으로 옮겨지기 전에 경계심을 푸는 것은 위험하다. . 미국의 평가도 신중하다. 북-미 회담에 참여했던 미국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이번 합의를 뒤집고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며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조심스러운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핵 활동 중단에 대해 ‘유예(모라토리엄)’라고 표현한 미국과 달리 ‘임시 중지’라고 주장했다. 북-미 대화가 북한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곧바로 핵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뜻이다. 핵 활동 중단보다 미국의 영양 지원을 앞세워 발표한 것에서도 북한의 속셈이 드러난다. 북한은 다음 달 15일 김일성의 100번째 생일 축하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정은은 김일성과 김정일 우상화를 통해 권력 기반을 다지는 기회로 활용할 것이다. 김정은은 강성대국 달성을 선언하면서 미국이 보낸 구호품을 주민에게 선물로 풀며 생색을 낼 수도 있다. 북한은 권력 교체기마다 미국과 핵 대화에 나서는 습성이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3개월 뒤 미국과 제네바 합의를 도출했다. 이후 중유와 식량 지원을 받으면서도 핵 개발을 계속했다. 북-미 합의를 체제안정용 방패막이로 이용한 것이다. 김정은도 아버지의 길을 답습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북한의 노림수를 간파하지 못하고 끌려가면 북핵 폐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북-미 합의를 실천으로 옮기려면 갈 길이 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와 5MW 원자로를 포함한 영변의 모든 핵 활동 중단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북한은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각각 제네바 합의와 9·19 공동선언으로 막대한 대가를 챙기며 ‘거짓 핵 폐기 약속’을 팔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줄곧 “같은 말(馬)을 다시 사지는 않겠다”고 강조했다. 두 차례 핵실험에 이어 우라늄 농축 핵무기 개발에 나선 북한에 미국이 다시 속는다면 북핵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것이다. 미국이 상습 사기꾼이 북한을 제대로 못 다루면 북한의 버릇만 더욱 나빠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