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검찰이 지난달 25일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안락사를 도운 사람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데 기준이 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1961년 제정된 자살에 관한 법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자살을 돕거나 부추기거나 조언할 경우 최고 14년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가이드라인은 불치병자의 자살을 도울 경우 16가지 요소를 검토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우선 조력자가 동정심에서 행동했는지, 금전적인 동기가 없었는지 여부를 따지게 된다. 또 죽기를 원하는 사람이 자살을 결정할 정신적 상태였는지, 자살을 택하도록 압박을 받았는지, 18세 미만인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지 등도 기소 여부를 가리는 중요 요소다. 키어 스타머 검찰총장은 “자살을 도울 경우 당연히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면서 “이번 가이드 라인이 안락사 조력자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법 자체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지 안락사를 도운 사람에 대해 어떠한 경우에 기소하고 어떠한 경우에 기소하지 않는지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것은 불치병을 앓는 데비 퍼디(47·여) 씨가 “안락사를 도와줄 경우 남편에게 14년의 징역형을 내리도록 돼 있는 법이 가혹하다”며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검찰에 안락사 조력자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을 만들라는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퍼디 씨는 안락사 병원인 스위스의 디그니타스에 가려 했으나 자신을 도와줄 남편이 처벌받을까 두려워 실행하지 못하고 소송을 제기했었다. 안락사가 불법인 영국에서는 그동안 불치병을 앓는 100여 명이 디그니타스로 죽음의 여행을 떠났지만 지금까지 안락사를 도왔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안락사 지지 캠페인을 벌여온 단체들은 새로운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현실에 맞지 않던 법률이 유명무실화됐기 때문에 안락사 자체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으나 일각에서는 재산 등을 노린 악용 사례가 생길 수도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BBC의 한 진행자는 최근 방송에 출연해 에이즈로 죽어가는 연인을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켰다고 털어놓는 등 영국에서는 안락사 문제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