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지킴이, 찰스(Charles) 왕세자
건축·도시개발 관심… 고층건물 비난, 인본주의 관점 개발 제시
건축 얘기를 하면서 찰스 왕세자 얘기를 불쑥 꺼냈으니 독자들은 왠 뜬금없는 얘기인가 하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러나 오늘 글의 주인공은 분명 영국의 찰스 왕세자이다. 영국은 물론 전세계 언론의 뉴스 메이커이기도 한 그가 주로 매스컴에 등장하는 이유는 아내였던 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나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는 왕실은 물론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카밀라 파커볼스와 재혼함으로써 다시금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으며, 동시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찰스 왕세자가 가진 세간에 비춰지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가 런던을 중심으로 영국의 건축과 도시를 위하여 해온 노력은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알려져 있다. 그는 오래 전부터 건축과 도시에 대하여 일반적 수준을 넘어선 관심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의 관심은 1960년대 이후 급격히 진행된 도시화로 인하여 런던을 비롯한 영국의 주요 도시들이 오랜 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아름다운 모습들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경계하는 것에 있었다.
이러한 찰스의 건축과 도시에 대한 열정은 1988년에 구체화 되었는데, BBC와 함께 제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영국의 미래(A Vision Of Britain)>가 바로 그것이다. 이 내용은 이듬 해인 1989년에 단행본으로도 출간된 바 있다. 그는 <영국의 미래>를 통하여 지난 몇 십 년간 런던의 모습이 얼마나 파괴되었는가를 보여주었고, 이를 근거로 영국의 건축과 도시가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했다. 특히,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도시계획들을 실패로 규정하고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영국의 도시들을 보다 살기 좋은 환경으로 개선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했다. 당시의 언론에 따르면, 대다수 영국 국민들로부터 이례적인 환영과 격려를 받았고, 반대로 개발업자들로부터는 만만치 않은 저항과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찰스는 여타 유럽의 고전적 도시들과 비교하여 런던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이 파괴되는 것을 특히 안타까워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순한 사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건설된 고층 건물들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는 카나리 워프(Canary Wharf)의 가장 높은 건물인 <카나다 스퀘어(One Canada Square)>를 디자인한 건축가 시저 펠리(Cesar Pelli)와 자신의 대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찰스는 “만약 내가 카나다 스퀘어와 같은 건물에서 일한다면 아마 미쳐버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더불어서 이러한 초고층 건물의 등장이 런던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파괴하는 출발점이 될 것임을 경고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경고는 서서히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찰스의 지적은 런던의 상징인 <세인트 폴 대성당> 주변의 재개발에도 이어졌다. <세인트 폴 대성당> 주변의 가장 큰 재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인 <파타노스터 광장(Paternoster Square)> 개발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대성당의 의미와 가치를 역설하였고 보다 저층으로, 그리고 보다 <세인트 폴 대성당>과 어우러진 디자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관하여 그는 실제 수 차례 강연을 했으며, 당시 제안된 다양한 디자인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의견과 비판을 제시한 바 있다.
찰스가 런던과 기타 지역에서 진행된 주요 건축 및 도시 관련 프로젝트에 깊은 관심과 일정 정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그의 왕성한 활동을 통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적인 권력을 갖지 않은 왕세자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건축가들과 도시계획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을 듯싶다. 그러나 왕실을 대표하는 왕세자가 자신의 국민들을 위하여 좋은 건축과 도시를 만드는 것에 앞장서서 직접 발로 뛰어 다니며 담당자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는 자체가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들에게는 무거운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런던이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가 지난 수십 년간의 찰스 왕세자의 숨은 공이 만만치 않게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