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가 끝난 후 지금 이 땅의 분위기는 선거에서 이긴 측이 ‘점령군’이 되어 사회 곳곳에 진주하는 양상이다. 이런 양상은 서로의 위치에 따라 한쪽에는 통쾌한 것일 수 있고 다른 한쪽에는 통한의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이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에서 일상화돼야하는 정권교체의 범주를 크게 일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한 사람 갈렸다고 세상이 이렇게 싹 갈리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가 싶을 정도다. 한쪽에서는 축제만난듯 기뻐 난리이다 못해 기고만장의 분위기가 역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초상난듯이 침울하고 거의 패닉상태에서 이민을 들먹이는 상황?이것이 대선을 끝낸 이 시점의 대한민국 실정인 것이다.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상황으로는 승리한 쪽이 화합과 수용을 얘기하고 진쪽이 승복과 관망을 거론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잘해보겠다’와 ‘지켜보겠다’가 정권교체의 의례적인 화두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세대로 갈리고 지역으로 갈려 ‘늙은세대’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마치 패잔병처럼 밀려나는 수모와 패배감에 어쩔줄 몰라하고 ‘젊은 세대’는 인터넷파워를 자랑하며 윗세대를 ‘변화를 모르는 수구’, ‘현실과 타협해온 무사안일’ 계층으로 몰아간다. 지역적으로도 어느 지역은 TV는 물론 신문도 안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교과서같은 얘기지만 선거에서 이긴 측은 국민의 뜻을 수임해 나라경영의 책임을 맡고 패배한 측은 충실한 반대자가 돼 견제의 역할을 한다. 이것은 일종의 게임이어야 한다. 사생결단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사생결단의 대결을 거쳐 이제 ‘이긴자(者)가 모두 차지해’반대자를 숙청하는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그것도 압도적 승리라고 말 할 수 없다. 전체 유권자 3500만에서 불과 57만표 차이로 이겼다. 한 표라도 이기면 이기는 것이 민주주의의 규칙이지만 그 차이에는 겸손과 자제의 변수가 작용해야하는 것이 인간만사의 이치다. 1150만명(46.6%)이 노무현씨를 반대했다는 사실에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게임의 원리로 돌아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노무현씨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은 긍정할 것은 긍정하고 협조할 것은 협조하면서 건전한 비판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침울할 것도, 공황을 느낄 것도 없다. 언제까지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만 있을 것인가. 다만 근자에 만연하고 있는 기회주의를 경계하며 한 자리 얻으려고, 한 이권 챙기려고 아부하며 용비어천가 부르지 말고 권력을 잘 감시하며 다음 선거를 기다리는 것이다. 노무현씨를 찍지 않은 것이 무슨 대역죄라도 된다는 말인가.
‘비판’을 건전한 상태로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노무현씨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의 자세와 태도다. 인수위에서 “저 사람은 반개혁적인 사람이니 참여시켜서는 안된다”는 손가락질이 횡행하는 상황은 ‘자기 편’을 만드는 데는 이로울지 몰라도 ‘자기 적(敵)’을 양산하는 처사일 뿐이다. 물론 어떤 의도를 갖고 새정부의 진로를 사사건건 방해하는 움직임에는 과감하게 대처해야하지만 대선으로 마치 천지가 개벽한 듯이, 개혁의 깃발아래 진군나팔 부는 자세로 국민의 절반을 냉소적인 방관자 내지 적극적인 반대자로 몰아가는 것은 참으로 우둔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새 정부와 새 대통령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선거에서 불가피하게 노정될 수밖에 없었던 대립과 갈등과 불안과 우려를 가능한 만큼 봉합하는 것이다. 거창하게 국민통합과 화합을 얘기할 생각은 없다. 원칙과 기본을 타협하라는 것도 아니다. 이긴 것은 이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배타성 경직성으로 인해 국민 절반의 신뢰를 잃거나 그들의 침체된 심경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다스린다는 정치의 정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노무현씨를 찍지 않은 사람들의 황폐함은 패배해서도 아니고 무엇을 잃게돼서도 아니다. 이긴 자의 지나친 오만과 “이제는 우리 세상이니 과거 기득권은 맛 좀 보라”는 식의 분위기 ? 그리고 이 나라를 어디로 어떻게 끌고갈 것인가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우리는 새 대통령을 뽑았지 혁명한 것이 아니다.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명제가 성립한다면 새로이 형성되는 이른바 ‘혁명’도 권력화될 것이며 그 권력도 부패할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