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원기(金元基) 상임고문은 27일 당 개혁문제와 관련, "제도와 사람 어느 한쪽만 바꿔선 안된다"며 "`청산'은 과한 표현이지만, 시대가 바뀌면 시대에 맞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의 정치고문인 김 고문은 이날 모 방송사 대담프로그램에 출연, "변화가 일시에 판단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내 개혁은 개혁특위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 되도록 새 정부 출범이전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 마무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고문은 노 당선자가 자신에게 제의한 것으로 알려진 개혁특위 위원장을 맡을 것이냐는 질문에 "(맡는 것을) 심각하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고 `정대철(鄭大哲) 선대위원장을 대표로 밀어줄 것이냐'는 질문에는 "퍽 좋아하는 동지"라고만 답변했다.
그는 `국무총리 제안'을 가정한 질문엔 "저보다 훌륭한 사람이 하길 바라며 훌륭한 사람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에 대해 김 고문은 "(대선때) 적절한 입장을 취해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며 "김 총재는 시대에 역할을 했고 정계의 중요한 분이기때문에 앞으로 잘 모시고 대화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무현의 제2인자로 출발할 김원기 고문은 정읍의 4선의원 출신이다 라종일 대사의 선친 라용균 전 국회부의장이 평생(?)국회의원을 맡아서 해 올 정도로 정읍의 대부로서 그 집안의 도움과 내락또는 이끌어줌 없이는 정읍의 중요활동을 할 엄두도 못내었다는 당시의 현실로 보아 김원기씨는 라종일 대사 본가의 후견을 받아 마름(butler)또는 청지기 역할을 했다고 볼수 있다.즉 라대사 본가의 신세를 져도 한참 졌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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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사람이라면 옛 주군인 라대사 선친의 얼굴을 생각해서라도 노무현씨에게 적극 귓띰하고 추천하여 라대사는 중용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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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라대사는 전문성에 있어 당장 눈앞에서 알랑거리는 유재건의원(특보)와 경합 경쟁관계로 다소 불리하고 특히 멀리 런던 으로 나와있는점이 또 당장 불리하여 당장의 북핵위기와 SAFA 해결후 집권2기에나 소용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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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당내 ‘노무현의 사람들’의 중심에는 김원기(金元基) 고문이 있다.노 당선자의 정치적 후견인을 자처해온 김원기 고문은 이번 대선 기간 중 노 당선자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당내 비노(非盧) 반노(反盧) 세력에 맞서 노 당선자를 지켜내는 데 앞장섰다. 노 당선자도 후보 단일화 과정을 포함하여 주요 고비 때마다 김 고문의 조언을 거의 그대로 따르는 등 믿음을 아끼지 않았다. 노 당선자가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요구를 거부했을 때 이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한 것도 김 고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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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역경을 헤쳐온 노(老) 정객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 고문이지만 이번 대선 과정에서 단일후보 결정이라는 ‘운명의 순간’을 앞두고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 고문은 단일 후보 여론조사가 진행되던 날 오전 기자실에 들러 “온 국민이 참여해서 경선을 통해 후보를 뽑아놓고 오늘 (여론조사로 후보를 단일화하는) 이 지경까지 이르고 보니 부끄럽다”며 눈물을 줄줄 흘려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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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당선자와 김 고문의 돈독한 관계는 오랜 정치 역경에서 싹튼 것이다. 두 사람은 1995년 정계복귀를 한 DJ가 자파(自派) 의원들과 함께 민주당을 깨고 나와 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DJ를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 국민통합추진회의를 결성했다. 전북 정읍에서 4선을 한 김 고문은 1996년 4·11총선에서 DJ와 다른 배를 탔다는 이유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노 당선자와 함께 국민회의에 입당, 2000년 4·13총선에서 지역구를 되찾았다. 하지만 DJ정권에서는 노사정위원장 등 한직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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