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경제는 유로권인 유럽보다 미국경제와 더 깊은 관계’
영국이 결국 유럽 단일화폐 유로체제에 가입할 경제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향후 재평가를 통해 토니 블레어 총리의 임기중인 2004년에 유로가입 국민투표를 실시할 가능성은 열어뒀다.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은 9일 하원 연설을 통해 그가 지난 97년 영국의 유로가입 조건으로 내세웠던 ‘5가지 테스트’ 중 금융산업을 제외한 4가지 부문에서 영국경제가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브라운 장관의 5가지 테스트는 ▲유로권 경제와의 수렴성 ▲유로 가입으로 인한 변화에 적응할 유연성 ▲외국인 직접투자 증가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 ▲고용 및 성장촉진 등이었다.
재무부도 이날 18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유로가입여건 평가보고서를 내고 영국이 ‘유럽통화동맹(EMU)’에 가입하면 무역증대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현시점에서는 고용과 주택 시장에 심한 충격을 가해 무역증대의 이익을 상쇄해버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특히 영국 경제가 유로권 국가보다 미국 경제와 더 깊게 연계돼 있어 유로권에 편입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에 앞서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 영국민의 3분의 2는 유로화 채택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노동당 정부가 연내 유로화 채택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러나 브라운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정부가 2004년 안에 “5가지 테스트에 대해 추가심사를 할 계획이며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그때 국민의 의사를 묻겠다”고 말해 차기 총선 이전 국민투표 실시의 여지를 남겨뒀다.
한편 <파이낸셜 타임즈>는 이번 결정이 이미 유로화에 가입한 국가들의 경우 경제적인 요소보다는 단일, 통합이라는 정치적 명제에 더 비중을 두었던 것과는 대조된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정치적 요인에 대한 고려보다는 가입의 경제적인 측면에 우선권을 두고 이번 테스트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재무부가 밝힌 보고서는 세계 4-5위 경제대국인 영국이 내린 테스트 결과인 만큼 세계 경제학계의 주요 인물들의 참여로 총 18개 분야별 세부보고서로 작성됐으며 현재 재무부 사이트에서 공개되고 있다.
통화 통합과 관련된 각종 이슈를 다루고 있는 이번 보고서는 일차적인 영국의 결정여부뿐만 아니라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도 그간의 이론과 실제를 반영하는 방대한 검토자료로 평가된다.
이로써 영국의 이번 결정은 현재 유로화 가입하지 않고 있는 덴마크와, 스웨덴의 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