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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어느 동네 구멍가게를 들어가더라도 crisps는 진열대 어느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을 정도의 지명도를 자랑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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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태어나 영국인들의 대표적인 주전부리로 자리잡아 ‘술 문화권’에서 볼 때 영국은 독일과 더불어 대표적인 맥주 문화권 국가에 포함된다. 이런 영국 사람들이 알콜성 음료 소비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소비행동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필자가 이와 관련된 컨설팅 프로젝트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데, 술과 먹거리의 상관 관계는 다양한 이종 변수(different factors)로 외식업(restaurant business)의 수익 증감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1). 당시 표본 조사를 하면서 많은 펍들을 방문했다. 그때 영국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먹는 ‘주전부리’의 범주에 대해 바닥까지 다 훑어 볼 수 있었던 것은 외식업컨설팅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에게는 엄청난 자산으로 남아 있다. 소위 말해서 술을 마시는 영국 남자들이 ‘술과 먹거리(drink and food)’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들의 머리 뚜껑을 열고 들여다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2).
그때 맥주와 함께 지겹도록 먹었던 것이 있는데 바로 crisps 라 부르는 봉지에 담긴 감자튀김이다. 이 crisps가 영국인들의 주전부리 범주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실로 대단하다. 학생들은 간식거리로 가방에 반드시 한두 봉지씩 넣어 다니고 영국 어느 동네 구멍가게에도 이 crisps는 진열대 어느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사실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정말 맛은 없다
(주3). 영국 chips는 fish and chips에 나오는 감자 튀김처럼 굵지만
미국식 potato chips은 종이처럼 얇다.
똑같은 감자로 만들었지만 서로 다른 음식이다.
이처럼 영국 사람들에게 스넥의 종류에 있어서 지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crisps의 발음이 상당히 어렵다. 특히 파열음 p 자 앞뒤로 s 자가 있어서 한국사람들에게는 어려운 발음이다. 그래서 평소에 익숙한 potato chips 라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런데 간혹 어떤 bar man 이나 bar maid는 “what?” 이라고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살짝 째려 보는 일들도 생기곤 한다. 그 이유는 영국에서 chips 는 fish and chips에 나오는 감자 튀김처럼 굵다. 따라서 미국식 potato chips 와 영국의 chips는 똑같은 감자로 만들었지만 서로 다른 음식이다. 그러다 보니, chips, potato chips 그리고 crisps 의 혼선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런 일들이 생겼을까? 라는 의문은 바로 이 potato chips가 영국이 아닌 미국에서 생겨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출생 과정 또한 정말 우습기 짝이 없는 코미디에 가깝다.
1853년 부자들과 상류층이 많이 몰려 드는 고급 휴양지 뉴욕의 사라토가 스프링스에 있는 Moon Lake Lodge에 조지 크럼(George Crum)이라는 요리사가 있었다. 어느날 조지 크럼이 근무하는 식당에 손님 한 명이 찾아와 감자튀김(프렌치 프라이)을 주문했다. 조지 크럼은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손님은 맛있는 감자튀김으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로부터 지금 막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손님에게 조지 크럼이 만들어 준 감자튀김은 자신의 미각 기준으로 형편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퇴짜를 놓았다. 손님이 왕인데 어찌하랴. 조지 크럼은 묵묵히 손님의 불평을 받아들여 감자 튀김을 다시 만들었다. 손님의 요구사항에 맞추어 이번에는 한층 더 얇게 감자를 썰어 튀겨 주었다. 그런데, 이 까탈스러운 신사는 이번에도 감자 튀김을 퇴짜 놓는 것이 아닌가.
요리사 조지 크럼이 까딸스런 손님을 위해 개발한 미국식 감자튀김은
potato chips 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스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조지 크럼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두 번이나 자신의 요리에 퇴짜를 놓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음… 그래… 나도 피장파장이다”라고 생각한 조지 크럼은 화난 심사에 복수할 요량으로 감자를 마치 종이처럼 얇게 썰었다. 그리고 먹을 수 없을 만큼 기름에 아주 깊게 푹~~ 튀겨 버렸다. 그리고 딱딱한 종이 같은 몰골의 감자튀김에 소금을 뿌려서 웨이터로 하여금 그 성질 사나운 손님의 테이블에 내 보냈다. 당시의 감자튀김 기준으로 보았을 때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손님의 테이블에 내 놓은 것이다.
통쾌한 복수를 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던 조지 크럼에게 날아온 결과는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두 번씩이나 퇴짜를 놓았던 손님이 그 흉측스러운 몰골의 감자 튀김을 감탄하며 맛있게 먹어 치웠던 것이다. 복수는 고사하고 그 원수같은 손님을 오히려 기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조지 크럼의 그 바싹 바싹한 감자 튀김은 뉴욕에서 삽시간에 유명해졌다. 그리고 조지 크럼이 활동했던 장소의 이름을 달고서 Saratoga chips란 별칭으로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후일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오늘날 potato chips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 왔다. ‘에라 엿먹어라’란 심정에서 만든 음식이 오늘날 스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으니 마치 한편의 유쾌한 코미디를 보는 듯한 음식의 유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1) 당시 필자가 컨설팅에 참여했던 gastro pub은 성장을 거듭하여, 현재 영국에서 전국적인 체인망을 구성하고 있는 major 급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다.
(주2) 인터뷰는 가장 필요한 사회과학조사방법론 중 하나 이기 때문이다.
(주3)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판단이니 오해 마시기 바란다.
글쓴이
정 갑 식
gsjeung@hotmail.com
국립 강원대학교 관광경영학과에 출강하던 지난 1997년 영국으로 유학을 와서
음식문화 분야의 박사과정을 거치며 14년째 영국에 생활중.
현재 런던에서 외식산업 컨설턴트로서 Eating out trend를 분석하여
business market road map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음식문화 월간지 ‘에센-ESSEN’에 유럽 음식문화 칼럼을 쓰고 있고
계간지 ‘한국 현대 문학관’에 영국의 유명 작가들을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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