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일의 <비트라 소방서>는 기존 건축의 구축적 원리를 해체하는 그녀의 건축 경향을 잘 드러낸다. 이 건물이 하나의 특정한 형태를 갖지 않는 이유는 건물을 이루는 개별 부재들이 완결된 모습에서 조금씩 틀어지고, 중첩되고, 이탈하기 때문이다. |
|
지난 2004년에 건축계의 노벨상 수상자로 자하 하디드가 결정되었을 때, 건축계는 크게 놀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금 늦은 감이 있다는 반응도 보였다. 그만큼 그녀가 현대건축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이라크 출신으로 영국에서 공부한 이후 줄곧 영국을 본거지로 활동하는 그녀는 현재 활동하는 현대 건축가 중에서 가장 독창적 형태와 공간을 창조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서울의 <동대문 운동장>을 <월드 디자인 플라자>로 개조하는 작업을 통해서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몇 해 전에 런던의 디자인 박물관에서 그녀의 주요 작품에 대한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당시 언론사의 요청으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주요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통상 자하 하디드의 건축을 접하면 상상을 초월한 형태에 놀라게 되고, 이윽고 그와 같은 형태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에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의문은 그녀가 지난 30여년 동안 꾸준히 실험해온 내용을 담은 스케치북을 보는 순간 사라진다. 그녀는 기존의 건물을 만드는 방식은 물론이고, 한발 더 나아가 상상 가능한 독특한 형태를 구상하고, 이것이 실제 건축물로 탄생할 수 있는 방식을 철저하게 연구한다. 그러므로 그녀의 작품이 드러내는 독특함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끊임없는 실험을 통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독일의 <비트라 소방서>는 기존 건축의 구축적 원리를 해체하는 그녀의 건축 경향을 잘 드러낸다. 이 건물이 하나의 특정한 형태를 갖지 않는 이유는 건물을 이루는 개별 부재들이 완결된 모습에서 조금씩 틀어지고, 중첩되고, 이탈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상식적인 창문과 개구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같은 부조화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새로운 건축적 존재를 표현하기 위한 요소라는 점에서 나름의 설득력을 지닌다.
분야를 초월한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
|
▲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수십 가지가 넘는 다양한 제품이 큰 인기와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녀가 지금까지 선보인 상상력을 개별 제품 디자인에 접목함으로써 해당 제품이 기존에 가졌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마도 건축가 중에서 가장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에 도전한 건축가를 꼽는다면 두말할 필요없이 자하 하디드일 듯싶다. 그녀는 작은 소품에서 자동차까지 수십 가지가 넘는 제품을 디자인했다. 물론 그녀가 디자인한 제품의 경우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대부분 실용화되어 판매되고 있다. 이처럼 자하 하디드가 여러 디자인 분야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건축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건축보다 더욱 큰 인기와 관심을 끈다고 하는 편이 나을 듯싶다. 그녀가 지금까지 선보인 상상력을 개별 제품 디자인에 접목함으로써 해당 제품이 기존에 가졌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의 종류를 떠나서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이 지닌 공통점은 유기체를 연상시킬 정도로 곡선감을 강조한 부드러운 형태다. 당연히 그녀가 디자인한 건물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개념이지만, 제품의 경우 구조적, 기술적 한계가 건축보다 약하므로 훨씬 더 적극적인 접목이 가능하다. 그녀가 디자인한 포크, 나이프, 스푼 세트를 보면 이 같은 개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마치 지금도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을 가질 정도인 이 식기 세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조각품과 다를바 없다.
그녀가 디자인한 자동차와 신발에서도 어김없이 동일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신발의 경우 특별히 각 부분에 대한 구분 없이 정교하게 다듬어서 하나의 완성된 형태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멀리서 보면 마치 그녀가 디자인한 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그녀가 디자인한 자동차는 더욱더 강렬한 디자인 감성을 드러낸다. 마치 미래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할 법한 모습의 이 자동차 역시 자하 하디드가 기존 자동차에 필요한 부재를 완전히 그녀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해서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도전은 분야를 초월하여 지속될 것이다.
글쓴이
김 정 후 (건축가, 도시사회학자)
archtocity@chol.com저서 : <작가 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2005)
<유럽건축 뒤집어보기>(2007)
<유럽의 발견>(2010)
ⓒ 코리안위클리(http://www.koweekly.co.uk),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