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확산’과 ‘폭정의 종식’을 주제로 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를 놓고 미국 내에서 비판과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압제를 무시하거나 용서하지 않겠다”고 한 언급이 외교적 강경노선 강화와 새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뜻이냐는 것이다. 자유를 확산시키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미국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느냐 혹은 이라크전 잘못에 대한 변명이 아니냐는 등에 비판이 모아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21일자 사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말과 달리 “어떤 나라의 폭정에 대한 반대가 미국의 안보·경제정책과 잘 맞지 않을 때는 일관되게 무시하고 용서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자국의 이해 때문에 인권과 민주주의에 눈감은 예로 이 신문은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중국을 들었다. 다른 기사에서는 “미 행정부는 파키스탄, 중국 같은 억압적 정부와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올란도 패터슨 하버드대 교수도 22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부시는 자유가 시민들에 의해 선택되고 지켜져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라크에서 총구로 민주주의를 강요하고 있다”며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취임사는 위선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권단체 ‘인권감시’의 케네스 로스 회장은 “부시가 인권을 자유라는 관점에서 얘기한 것은 의도적이었다”며 “자유는 추상적 개념이지만 인권은 부시 행정부를 속박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들 외에도 상당수 언론들은 부시의 취임사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백악관측은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는 그간의 외교정책에 관한 신념을 반영하고 기존 정책의 철학을 명료하게 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폭정의 종식’이라는 목표가 외교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22일 백악관 브리핑실에 들러 “취임사를 놓고 새로운 공격, 새로운 무력시위 등으로 지나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취임사 진의는 자유에 관해 말했다는 것”이라고 직접 부연하기도 했다.
이라크전이 진창에 빠진 이후 숨을 죽여왔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은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를 일제히 환영하고 나선 것도 주목할 만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2일 “부시가 취임연설에서 집권2기 정책목표로 ‘세계 폭정의 종식과 민주주의 촉진’이라는 신보수주의적 핵심목표를 천명하면서 네오콘이 다시 부상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