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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젤은 오랜 역사가 만들어낸 여러가지 이야기와 국경도시의 장점을 살린 다양한 문화적 혼재, 그리고 수많은 인물과 학자들, 아티스트들이 남기고 간 담론과 작품이 어우러져 걸음을 낭만으로 만들어 주는 도시다. 워킹 루트 중에 볼 수 있는 라인강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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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주는 도시
여행에서 동선을 그린다는 것. 더 면밀하게 말하자면 걷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행위 중 하나다. 물론, 경우에 따른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여행에서, 특히나 도시 여행자들에게 걷는다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이자, 여행을 의미있게 만드는 심각한 고려대상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바젤은 여행자들에게 참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주는 도시다. 단순히 다른 여러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걸어다니면서 만날수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들 때문만은 아니다. 걷는다는 것이 바젤과 매우 잘 어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파리처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정처없이 걷는 방랑자들이 몰려들었던 곳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걷는다는 것이 일종의 중요한 방문행위다. 오랜 역사가 만들어낸 여러가지 이야기와, 국경도시의 장점을 살린 다양한 문화적 혼재, 그리고 수많은 인물과 학자들, 아티스트들이 남기고 간 담론과 작품이 어우러져 그 걸음을 낭만으로 만들어 주는 도시라서 그런 것 같다.
바젤에는 다섯가지의 테마 워킹 루트가 있다. 이들 루트들은 이 도시와 관련이 있는 유명한 학자들 또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따서, 각각 에라스무스, 야콥 부르크하르트, 토마스 플라터, 파라셀수스, 한스 홀바인 산책로로 불린다. 각각의 사람들이 이 거리들과 어떤 관련이 있고 의미를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자기 개성대로, 마치 그 이름이 지어진 학자들 개개인의 개성들 만큼이나, 바젤의 구도심을 다양한 방향으로 바라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다.
역사의 심장을 경험한다는 에라스무스의 길부터 (30분 정도 소요), 과거와 현대의 하모니라는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길 (45분), 건축과 학문의 길이라는 토마스 플라터의 길 (45분), 중세시대를 바라볼 수 있는 파라셀수스의 길 (60분), 라인강변을 양쪽으로 경험해 보는 한스 홀바인의 길 (90분) 등 개성이 도드라진 길들을 사람들이 직접 고르고 따라 걸으며 이 도시의 매력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다.
유명한 학자 또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딴 다섯가지 테마 워킹 루트는
개성이 도드라진 길들을 사람들이 직접 고르고 따라 걸으며
이 도시의 매력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루트는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유사한 구역을 지나기도 하면서 바젤 구도심의 매력적인 장소들을 한 테마로 묶어 루트화된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이처럼 걷는다는 것을 관광 체험 코스로 세련되게 만든 도시가 유럽에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물론, 이렇게 걷는 루트를 지정해두는 것이 오히려 진짜 방랑 여행자들에게는 불편한 과잉 친절이 될 수도 있을것이다. 나만의 루트, 나만의 공간구성을 꿈꾸는 여행자라면, 더더욱 이들 루트 구성이 이 도시에 대한 매력을 반감시킨다고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구도심을 돌아다녀보면, 왜 이렇게 짜여졌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아주 독특한 목적과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들 루트 다섯개 모두 돌아봤을 경우, 다양한 관점에서 각각의 테마를 한번에 엑기스만 뽑아 돌아볼 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거기에 바젤이 간직하고 있는 고도(古都)의 예사롭지 않은 역사는 발걸음의 배경을 더욱 깊은 이야기속으로 이끈다. 그저 이 워킹루트 맵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아니, 곳곳에 친절하게 놓인 표지판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그 역사속에 동참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모든 루트가 바젤 시청사 앞 광장에서 시작해서 끝나는 것도 매우 잘 짜여졌다고 생각한다. 바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는 빨간 바젤 시청사는 발걸음을 시작하고 끝맺기에 충분히 좋은 랜드마크임에 분명하다. 거기에 이 광장에 있는 Confiserie Schiesser는 아침에 걸음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140년이 넘은 역사속의 모닝커피를, 또는 느지막한 오후에 걸음을 마무리짓는 이들에겐 현재 속의 한숨돌릴 오후의 휴식을 안겨준다. 커피 한잔이 있고 아름다운 건물이 시작과 끝을 알려주며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역사의 흔적과 현재 이야기가 있는 매력 넘치는 걸음을 지닌 여행도시가 과연 또 있을까 감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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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다는 것을 관광 체험 코스로 세련되게 만든 도시가 유럽에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바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는 빨간 바젤 시청사는 발걸음을 시작하고 끝맺기에 좋은 랜드마크임에 분명하다. |
걷는 동안 많은 사색이 떠오르고, 고민이 해결된다는데, 걸음을 위한 바젤 거리들은 그래서 이 도시에서 수많은 학자와 아티스트를 배출한 인큐베이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바젤을 방문한다면, 당신은 구두보다 운동화를 챙겨야 한다. 당신의 발을 편하게 함으로 당신의 눈이 역사를 보고, 당신의 손이 그 흔적들의 촉감을 느끼며, 당신의 코가 지금 바람이 이끌어온 향기를 느끼게 하고, 당신의 귀가 그 사이에 들리는 현재 사람들의 소리를 듣게 하며, 당신의 혀가 그 시작과 마무리의 휴식속에서 여유를 즐기게 하라. 바젤은 그렇게 걸어야 되는 도시이고, 그렇게 느껴야 하는 곳이며, 그렇게 여행을 함으로 삶을 바라보게 하는 도시다. 그래서, 바젤은 정말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가 넘치는 도시라 불려지는 것 같다. 단지, 걸을수 있게, 그렇게 여행할 수 있게 배려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자들에게 매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글쓴이
박 서 재
plibrary@daum.net
워릭대학교 Theatre Studies 박사과정
University of Bristol (MA/Mphil)
유럽 17개국, 100여개 도시
이벤트·축제 방문 리서치
다수 공연작품 연출·조연출·스태프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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