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뭐하니” “연애소설 쳐요”
소설의 장치도 다양하다. 가난한 소녀와 부유한 남성의 동거, 거짓과 오해, 삼각관계, 불치병, 그리고 끝은 ‘해피엔딩’이다. 성인작가 뺨치는 수준의 이 작품은 “너무 잘 썼다”는 또래들의 환호에 힘입어 최근 가상소설 코너 ‘명예의 전당’에 당당히 올랐다.
초등학생들이 인터넷 소설쓰기에 빠져들고 있다. 동화가 아니라 로맨스·무협·판타지 등 장르도 다양하다. 각 인터넷 포털과 소설창작 관련 사이트, 블로그 등에 올려놓은 건수가 현재 100만건에 육박한다. 지식검색 코너에 “제 작품을 평가해달라”며 올리기도 한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어린이용 ‘쥬니버’ 가상소설 코너에 지난 2년간 누적된 작품은 16만여건이다. 보통 학기 중에는 하루 60여개씩 올라오지만 여름방학을 맞아 무려 500~600개 작품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대부분 50줄도 안되는 초단편들이지만, 20~50회짜리 ‘대하소설’급도 눈에 띈다. 네이버측은 “대개 조숙한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들로 강력한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며 “지난 2003년 <그놈은 멋있었다>는 인터넷 연애소설로 큰 화제를 일으킨 여고생 귀여니의 성공 이후 그를 모방하는 작가의 연령대가 낮아진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인터넷 소설을 즐겨쓰는 박현주(대전 성지초 5년)양은 “귀여니 언니를 존경하며, 크면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양은 “친구들의 연애 경험담 등을 듣고 내 상상력을 덧붙인다”며 “소설 한편 쓰는 데 20분쯤 걸린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인터넷 소설은 대부분 팬픽(fan fiction·만화·소설·영화 등 인기작품을 팬들이 자신의 뜻대로 재창작한 작품)이지만, 주제는 사춘기에 갓 들어선 여학생들의 최대 관심사인 연애사건에 집중돼 있다.
‘길거리 캐스팅’, ‘1등과 부잣집딸’, ‘훗? 날 갖겠다고?’, ‘내 남편은 고등학교 일진짱’, ‘양손의 떡 그녀의 불안한 고민’ 등의 제목이 암시하듯 연예인이나 폭력배와의 계약연애, 삼각관계가 주를 이룬다. 영상문화에 길들여진 세대답게 스타와 인터넷 얼짱을 등장시켜 이들의 이미지와 짧은 대화, 급속한 장면전환으로 구성하는 게 보통이다.
최근엔 ‘따리린’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초등생의 소설이 네티즌 사이에서 경악과 우려를 낳기도 했다. “안넝? 난 솨넬이라구햄. 나눙 쏘ㅑ넬 초딩학교에 다념. 내 팬클럽은 벌써 247465486435132개나 댄다? 민이가 나를 잡더니 35221324시간 키쑤했다. 갑자기 배가 뽈롱뽈롱 튀어나왔다. 민이얌 나 임쉰인가밤 ㅜ_ㅜ…”
문법 파괴와 이모티콘(감정을 담은 기호) 남발은 물론 스타주의와 폭력, 섹스를 어린이의 무지한 시선으로 거침없이 묘사한 것.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이인화 교수(소설가)는 “하이틴 문학을 수동적으로 소비했던 소녀들이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인 생산자로 바뀐 현상으로, 모방을 기초로 습작하다 보면 독창적인 자기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며 “하지만 지나친 폭력이나 선정성에 빠지지 않도록 어른들이 지켜보고 적절히 통제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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