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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칼럼> 당신은 가끔 느리게 가고 싶지 않습니까?
코리안위클리  2005/07/21, 02:21:37   
1.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란 옛사람의 시구가 있습니다. 여름날 폭염 속에 허리띠를 두른 채 의관을 정제하고 앉았자니 땀이 비오듯 흐른다. 가만있으려니까 그만 발광이 나서 ‘으아아’ 하고 고함을 지르고 싶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영국이라는 비교적 시원한 곳에서 여름을 나고 있는 우리는 그래도 조금 나은 형편이지만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으아아’ 고함을 지르고 싶을 정도의 더위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에어컨은 커녕 흔한 선풍기조차 없이 쥘부채 하나로 고스란히 더위를 견딜 수밖에 없던 옛 선인들은 이 여름을 어떻게 났을까?’ 하고 말입니다.
박제가가 어린 시절 글씨 연습을 할 때 일입니다. 더위를 견디다 못해 옷을 활활 벗고 분판 위로 올라가 글씨 연습을 했습니다. 전신으로 땀이 줄줄 흘러 배꼽에도 땀이 고이고 무릎 아래에도 흥건히 고였습니다. 그는 붓에 고인 땀을 찍어 분판 위에 글씨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읽은 책마다 공책을 만들어 새겨야 할 대목을 베껴 적었습니다.
후한의 고봉(高鳳)이라는 사람은 한여름 아내가 장보러 간 사이에 마당에 널어놓은 겉보리가 소나기에 다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책만 읽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독서란 옛 선인들에게 있어 생활의 전부였고, 삶의 의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아 허리를 곧추세우던 책읽기도 한 여름의 무더운 날씨 아래에서는 좀처럼 소용이 없습니다. 이럴 때는 긴장을 푼 ‘느림’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서헌순은 <우영(偶詠)>이란 작품에서 ‘산창서 하루 내내 책 안고 잠을 자니, 돌솥엔 상기도 차 달인 내 남았구나. 주렴 밖 보슬보슬 빗소리 들리더니, 못 가득 연잎은 둥글둥글 푸르도다(山窓盡日抱書眠, 石鼎猶留煮茗烟. 簾外忽聽微雨響, 滿塘荷葉碧田田)’라며 여름날의 독서를 노래했습니다. ‘자리에 누워 책을 읽다가 심심하면 차를 달여 마시고, 졸리면 책을 가슴에 얹은 채로 단잠에 빠져든다. 주렴 밖을 지나가는 빗소리에 선듯한 잠을 깨어 연못의 이들이들한 연잎을 바라본다. 나른하던 사지에 한결 생기가 돌아온다. 흐리멍덩하던 정신이 활짝 깨어난다’로 쉽게 풀이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또 어떤가. 남극관의 <잡제(雜題)>입니다. ‘자리 옆의 더위가 물러가더니, 처마 틈의 그늘도 옮기어 가네. 하루종일 묵묵히 말하지 않고, 정을 빚어 다시금 시를 짓는다(座隅覺暑退, 隙見陰移. 竟日?無語, 陶情且小詩)’. 이를 쉽게 풀이한다면 ‘문틈 사이 처마 그늘이 옮겨가더니 한낮의 푹푹 찌던 더위도 조금 수그러들었다. 하루 종일 책과 놀았다. 한마디도 입을 열어 말한 적이 없다. 그러던 중에도 가슴 속에서는 물레가 돌 듯 정을 빚어올려 시를 짓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앞만 보며 달려 왔습니다. 우리는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조금 삶의 속도를 늦추고 밖으로만 향하던 마음을 거두어 침묵 속에서 황폐해진 내면을 돌보아야 할 때입니다. 산창에서 하루종일 책을 안고 잠자는 태고적의 한가로움이야 누릴 수 없다 해도, 휴가의 여행길에서, 혹은 집안에서 맞바람이 들게 창문을 열어놓고 시원한 옷차림으로 독서삼매에 빠져드는 여유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침이 푸르게 밝아 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가끔 좀 느리게 가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우리의 발자국을 돌아 보고 싶지 않습니까?

2.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필립 시먼스라는 사람이 쓴 <소멸의 아름다움>(김석희 옮김, 나무심는 사람)이라는 책입니다.
‘지금 나는 휴지 한 장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겹다. 하지만 병에 걸린 덕분에 나의 행동을 신성(神聖)의 맥락 안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건강할 때는 수건으로 아이 얼굴을 닦아주는 일 같은 것이 귀찮은 일거리였지만 이제는 그런 식으로 누군가와 내 삶을 나눠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까마귀가 들판에 내려앉는 것을 볼 때, 아이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것을 지켜볼 때, 밭에 심은 콩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는 늙은 농부의 얼굴을 바라볼 때, 나는 이제 그 순간을 신성한 것으로 인식하게 됐다.’
이 글은 <소멸의 아름다움>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이 글을 쓴 필립 시먼스는 영문학교수로서 또 장래가 촉망되는 문인으로서 생의 활기찬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그는 ‘죽어 가는 기술’(Art of dying)을 터득해야 하는 암담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루게릭(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이라는 불치병으로 5년 안에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른다는 공포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나날들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어떻게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가를, 허무한 꿈에서 깨어나 어떻게 더 완전한 상태로 일어나게 되는가를 깨닫는다. 우리의 삶이란 어차피 꿈의 좌절, 체력의 저하, 희망의 포기,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부상을 당하거나 병에 걸림 등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날들을 맞기 마련이다. 이러한 고통의 날에서 자유하려면 떨어지는(fall)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 성취해야 하는 것, 계획한 것,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마저 놓아 버릴 때에만 가장 완전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가 모든 것을 놓아버린 순간 결핍과 불완전 속에서 비로소 그의 삶을 온전하고 충만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8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죽지 않고 살아서 ‘살아가는 기술’(Art of living)을 터득해 가고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책은 자비로 출판되었으나 그 글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그 판매량이 상당한 수준에 오르자 대형 출판사가 판권을 인수하고 출판에 들어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핵심적인 내용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다만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뿐입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하셨고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고 이미 이천년 전에 선포하셨습니다.
버리기는 버려야 하는데 어디까지 버리느냐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러한 생각조차 버릴 때 참 자유 할 것인데, 그게 힘이 듭니다.
영어에서 사유(私有)를 뜻한 ‘Private’란 말은 ‘빼앗는다’는 뜻인 라틴어 ‘Privare’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엇엔가 너무 집착할 때 그것이 곧 우리 자신을 옭아매는 사슬이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한편 소유를 당하는 것이며, 그만큼 부자유해지는 것입니다.
적게 가질수록 더욱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엔 가는 적게 가진 그것마저도 다 버리고 갈 우리가 아닙니까?
태어났으므로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살아야 하는데 문제는 생존에 있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에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버리고 살아야 합니다. 이루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열심히 버리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되풀이하거니와 말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걸을 수 없는 것이 내 앞에 놓여 있는 인생입니다. 나는 지금 솔직히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버릴 것은 많고 버리지 못할 것은 더 많고, 그래서 더욱 힘이 듭니다. 오늘도 더듬거리며 비틀거리며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다만 죽음의 힘에 의하여 모든 것을 빼앗기기 전에 나는 나의 힘으로 나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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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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