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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듣는 공연’과 한국 공연 : 해외 진출의 대안?
코리안위클리  2023/04/21, 22:17:13   
BBC의 첫 라디오 드라마, 리처드 휴즈(Richard Hughes)의 ‘Danger 위험’ 또는 ‘The Mind Play탄갱 (炭坑)’으로 소개된 작품
(권고사항) 혹시 가능하다면 이 글을 읽기전에 스마트폰으로 BBC Sounds, DEADHOUSE를 검색해 이어폰을 착용하고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들어보시길 권장합니다. 사운드에서 흘러 나오는 지시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됩니다. 3분짜리 호러 3부작으로 심약자나 임산부는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소리만 전달되는 라디오의 특성상 시각 요소 없이 대화, 음악, 음향 효과만을 이용해 드라마 내용을 전개한 ‘듣는 컨텐츠’는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문화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인기가 시들해지더니 청취자들이 영상 문화로 옮겨 가면서 오디오 드라마를 제작하는 방송사가 드물뿐더러 제작하더라도 방송 시간이 극히 적어졌죠. 그동안 라디오 드라마나 오디오 영화는 라디오, 카세트 테이프, 콤팩트 디스크 등등 전달 매체에 따라 다른 듯 같은 의미로 크게 구분할 필요성도 없이 혼용되어 사용되다 철 지난 장르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을 전후해 뚜렷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데요, 한국 언론에서는 글로벌 듣는 컨텐츠 시장을 2021년 5조원에서 2030년까지 30조원 시장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기사들이 나타났고, 한국내 듣는 콘텐츠 시장 규모는 2019년 약 256억, 오는 2024년에는 약 4.4배 증가한 약 1,115억원 규모로 증가할 것(작년 한국일보 10월 7일 기사)이라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 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이제훈 문채원 주연의 ‘층’이 공개 직후 450만 이상 청취의 성과를 거뒀고 이를 통해 오디오 시장이 한국 대중에게 얼마나 가까운지 긍정적인 결과를 확인했죠.
대중적인 듣는 컨텐츠는 라디오가 발명된 후에 새롭게 태어난 것이며 전파를 매체로 드라마적인 표현을 하는 청각 예술입니다. 초기의 듣는 컨텐츠는 세계 어느 나라를 막논하고 무대 연극을 라디오라는 매체에 적용시킨 것이었으며, 이 분야의 선두 주자는 영국 BBC 방송이었습니다.
지난 2월 BBC RADIO 4에서 오디오 드라마 런칭 100주년 기념으로 잠깐 다시 소개되기도 했었던 ‘탄갱’ 이라는 작품은 홍수로 인해 무너져버린 암흑의 지하 광산 터널에서 살아남은 광부 세 명의 생존기를 다루었는데 1923년 2월에 관객을 실제 초대해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조명을 끄고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대극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며 또한 문학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무대 예술이 지닌 특성과 라디오라는 전파 매체가 결합되고 여기에 음악과 음향효과가 가해져서 이루어지고 있는 종합예술이었습니다. 당시엔 무대 연극을 어떻게 청각만으로 이해시키는가에 집중되었다 하는데요, 2차 대전 후 텔레비전 방송이 본격화되고 텔레비전 드라마가 등장하여 라디오를 통해 듣는 컨텐츠는 일반적 매력이 상실되고, 광고 수입으로 연결되는 상업 방송에서 청취율 하락은 사실상 ‘듣는 드라마’의 종말로 연결되게 됩니다. (우리 한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일 듯하네요.)
하지만 이런 하락세에도 BBC Radio 4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듣는 컨텐츠 시장은 1930년대 후반부터 명맥을 유지해 지금은 연간 1,100만 청취자를 이끌고 있으며, 최근엔 기존 매체인 라디오 중심에서 디지털 컨텐츠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엔 뒤엔 두 가지 주목해야할 기술 발전이 있어요. 라디오 시대와는 다른 모바일로 대표되는 유통 기술과 녹음 기술(바이노럴, Binaural Sound Effect)이 그것입니다.
모바일 유통의 혁명은 일시적인 유행에 따라 변화하는 트랜드가 아니라 동참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패러다임, 즉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 인식의 체계입니다. 공연 장르에서도 모두가 갖고있는 스마트폰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든 저렴한 비용과 소비자 중심으로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코로나 시국이 나타나기 직전인 2020년 2월 7일 영국 예술 위원회에서 발표한 ‘디지털 컬쳐 2019(Digital Culture 2019)’에서도 ‘영국 전체 문화 예술계내 부문별 기술의 영향력’ 에서도 드라마 부분엔 ‘디지털 기술 유통의 필수/중요도 조사’가 있었고 이에 상당한 동의를 받은 바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우리는 뭔가를 보거나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유통에 최적화된 기기를 늘 몸에 지니고 있게 된 셈이죠.
그리고 ‘듣는 드라마’로 변화를 주도한 두 번째 기술은 바로 바이노럴 사운드 녹음입니다. 이 분야는 비교적 오랜 역사와 시도가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BBC R&D팀(2012-2020년 프로젝트)에서 상용화에 성공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소리를 인지하는 상태와 같은 조건 하에서 녹음해 음원이 각각의 위치에서 우리 귀에 도달하는 위상차로 인해 마치 청취자가 실제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효과를 주는데 이 방식으로 전장 최전방의 한복판에 서있는 사람이 듣는 소리를 녹음하고 샘플을 관객에게 들려준다면 눈을 감고 헤드폰 너머의 치열한 전장을 떠올리기에 손색없는 퀄리티를 “보여”주게 되죠. 청각적 뇌의 착각과 시각적 이미지 합성을 합친다면 인간의 뇌에서 떠오르지 못할 것은 없는 것입니다.
뉴욕 타임즈에서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완벽한 이머시브 작품중 하나”라고 평가 받은 2016년에 소개된 영국의 사이먼 맥버니(Simon McBurney)의 'The Encounter'가 바이노럴 사운드 기술로 만들어진 ‘듣는 연극’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참고로 지난 팬데믹 기간중 한국에서도 무료 중계가 되어 알려지면서 국내 공연 문화 비평가인 SBS의 김수현 기자는 “몇 달간 본 온라인 공연 중 가장 몰입했던 공연” 으로 언급해 주목 받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아예 듣는 컨텐츠를 중심으로 제작하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영국 극단이 있죠.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베스트VR부문’ 공식 초청작으로도 초대된 영국의 체험형 오디오 극단 다크필드(Darkfield)이며, 국내엔 우란 문화재단과 파트너쉽을 맺고 그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운송용으로 사용되는 40피트 컨테이너 내부를 항공기 내부로 (에어버스 320) 매우 정교하게 바꾼 이 작품은 탑승이 끝나고 나면 승무원의 안내, 항공기 이륙과 함께 암전 되며 극이 시작한다. 관객들은 헤드폰을 쓰고 대부분 비행기 안에서 이어지는 상황들에 빠지게 되는데 결론이 나는게 아니라 관객들 모두를 특별한 경험 위에 놓아둔 상태에서 소리 자극만으로 관객 스스로의 상상력을 자극해 끌어가는 작품이다. (플라이트 Flight)

운송용으로 사용되는 40피트 컨테이너 내부를 항공기 내부로 (에어버스 320) 매우 정교하게 바꾼 이 작품은 탑승이 끝나고 나면 승무원의 안내, 항공기 이륙과 함께 암전 되며 극이 시작한다. 관객들은 헤드폰을 쓰고 대부분 비행기 안에서 이어지는 상황들에 빠지게 되는데 결론이 나는게 아니라 관객들 모두를 특별한 경험 위에 놓아둔 상태에서 소리 자극만으로 관객 스스로의 상상력을 자극해 끌어가는 작품이다. (플라이트 Flight)

 
이제는 직접 공연장으로 가서 극단이 만들어 놓은 장치 속으로 들어 갈수도 있으며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면 세계 어디에서나 저렴한 비용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영상 컨텐츠 속에서 영국의 듣는 컨텐츠 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고 BBC에 따르면 주당 약 400만 이상이 ‘BBC Sounds’를 방문하고 그 중에서도 오디오 드라마 시장은 지난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지금은 연간 710만 관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통적으로 고령의 공연 관객층을 가진 영국에서 2-30대 관객층이 늘어가는 것이 주목할 만한 특징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듣는 공연’은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표현 방법을 개척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어요. 실제와 같은 공간감을 부여해 기존 스테레오 환경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몰입감을 제공하는 것은 오디오의 특성을 살린 독특한 예술장르로서의 ‘듣는 공연’이 추구해야 할 당연한 길이기도 합니다. 이제 국내에서도 ‘듣는 컨텐츠’로 세계의 ‘귀’에 호소하는 한국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요?

ILOVESTAGE 김준영 프로듀서
junyoung.kim@ilove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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