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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소재에 얽매이지 말고 선입견 없이 느껴지는대로 재미있게 봐 달라고 부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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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Thirst> 박찬욱 감독 본지 특별 인터뷰 … 16일 영국 개봉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칸의 남자’로 불리고 있는 박찬욱 감독이 16일 영화 박쥐의 영국 개봉을 앞두고 런던에 왔다.
박 감독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로 흥행감독의 입지를 다진 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복수 3부작 시리즈를 완성시켜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는 친절한 금자씨로 젊은 사자상, 올드보이와 박쥐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2차례나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발돋움했다.
박 감독을 7일(수) 저녁 주영한국문화원에서 만났다.
영국 현지 언론과 계속된 인터뷰에도 편안한 분위기의 세련된 매너와 한국 영화를 이끄는 거장의 여유로움이 인상적이었다."런던 소호에서 5일(월) 가진 시사회에서 관객들이 많이 웃어주고 반응이 무척 좋아 감동적이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박 감독은 “어둡고 무거운 소재가 많아 폭력적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코미디, 로맨스, 액션 등 여러 장르가 융합된 영화다.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이 원하는 대로 영화를 재해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블랙 유머을 가장 잘 이해하는 나라가 영국이라고 말했던 박 감독은 짧은 일정을 마치고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9일 한국으로 돌아갔다.
영국에는 자주 오시나요. 인상은 어떤지요? 영국에는 5번 왔어요. 런던, 워릭, 옥스포드에 갔었는데 모두 문화원에서 주최한 한국영화 순회 상영 행사 때문이었어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영국은 차분한 가운데 안 차분한 문화가 또 있잖아요.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점잖은 귀족과 신사들의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 난장판에 미친놈들의 세계도 있으니까. 언제나 제가 느끼는 건
영국 사람들이 제 영화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 입니다. 관객들이나 영화 팬들이나 기자, 평론가들하고 이야기를 해 보면 다른 어떤 나라보다 영화속 블랙 유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5일 (월) 런던 소호soho screening rooms에서 상영된 <박쥐>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물론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였겠지만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역시 유머에 대한 질문이 많았고 제가 유머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잘 이해하는 것 같았어요.
박쥐를 본 한국 관객들과 비평가들의 평가가 좋고 싫음이 분명하게 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터넷에 올려지는 관객들의 댓글이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예전에는 싫지 않았어요.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가 되어 버리면 너무 재미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반응이나 논쟁 자체가 흥행에 영향을 주는 시대가 됐어요. 요즘의 한국 관객들은 영화를 선택할 때 네티즌 평점을 보고 판단을 하거든요. 영화를 본 1만 명의 평균. 그러니까 10점을 주는 사람과 1점을 주는 사람들로 나뉜 내 영화들은 평균을 내면 5점이 되는 거에요. 아주 점수가 낮은 영화가 되어 버리는 거죠. 그런데 그걸 보고 영화를 선택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니까 이 피드백이라는 게 그렇게 건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내 영화가 논쟁을 일으켰다 하면 선물같이 기분 좋은 일이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시대가 되어 버린 거예요.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좋지만 점수를 매겨버리니까 그것이 안 좋다는 거예요. 그리고 평균 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논쟁은 극단으로 나뉘는 맛인데 평균이라는 것은 나뉜 것을 없애버리는 거잖아요.
박쥐는 코믹, 액션, 멜로, 호러, 공상과학 등 다양한 장르가 포함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봐 주길 바라나요? 장르 선입견 없이 보러 왔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뱀파이어 영화니까 당연히 호러(공포)영화일 것이다 라든가, 또는 가톨릭 신부가 나온다고 하니까 심각한 종교적인 영화인가 보다 하는 식으로 몇 개의 형용사로 정리될 수 있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본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장르를 결정하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이 예상을 하게 되요. 장르 영화는 어떻게 흘러 간다는 여러 가지 약속과 규칙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신부가 나와, 그 신부가 어떻게 될까, 공포 영화는 이러이러하게 진행되겠지’ 이렇게 예상을 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 예상과 동떨어진 장면이 진행되면 될수록 무슨 영화가 이런가 하고 불만을 갖게 되요. ‘자꾸 왜 내가 갖고 있는 장르의 프레임하고 이 영화는 맞지 않지’라는 불일치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영화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지요.
가톨릭 신부가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타락한 모습으로 파격적으로 비춰지는데 이것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있지 않을까요. 주인공 신부가 자기가 원해서 뱀파이어가 된 것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살인을 즐기고 흡혈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폭력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에 성직자를 모독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성직자의 노력을 숭고하게 묘사하고 있으니까 진정한 신자라면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반감을 느낄 만한 소재나 주제가 많이 들어있는데 예를 들면 성직자가 흡혈귀가 되고 친구의 아내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친구를 살해하고 성직자의 마지막 양심을 표현하듯 성기를 노출하는 요소들 때문에 관객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소재 때문에 이 영화가 불편할 수도 있는 거죠.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관객들에게 자꾸 도전적이고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니까 귀찮고 성가시고 불편하고 그래서 싫을 수도 있는건데 이것 때문에 싫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도 좀 반가운 마음이 있어요. 영화를 아주 진심으로 밀착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불편함도 느끼는 거니까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영화를 잘 받아들인 사람들이란 생각도 들어요. 몰두했다는 뜻이거든요.
영국에서 박 감독님의 영화를 기대하는 한인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
제가 좀 심각하고 어두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유머러스한 장면이 나와도 ‘이게 웃어야 되는 건가, 웃긴 거 같긴 한데 분위기는 그거 아닌 것 같고’ 뭐 그런 어떤 심리적인 장벽 같은 것이 있나 봐요. 맘껏 웃지 못하더라구요. 웃긴다 싶으면 거리낌 없이 웃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작품은 어떤지요. 구상하거나 준비중인 작품이 있는 지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생각 중인데요 한국어 영화가 될지 영어 영화가 될지도 아직 모르겠어요. 다만 감독이 아닌 제작자로서 ‘설국열차’라는 봉준호 감독 연출의 영화 제작을 시작했어요. 프랑스의 그래픽 노블(미술을 바탕으로 만화의 내용에 사회와 철학을 담는 표현방식)을 원작으로 하는 액션 영화입니다. 영화 제작을 위해 돈도 모아야 하고 헐리웃 스타도 캐스팅 해야 하는 등 준비할 것이 많아요. ‘설국열차’는 한국 돈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영화라서 유럽과 한국, 미국에서 돈을 끌어와서 제작하는 다국적, 다언어 영화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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