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의 시 ‘청포도’ 전문>
1.
무더운 날씨 덕분에 우리집 마당의 포도가 검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비록 청포도가 아니지만 하얀 모시수건과 정갈한 은쟁반,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 그렇게 나의 기다림도 익어가고 있습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아이들은 잘도 울고 잘도 잡니다. 요즘 나는 그런 아이들처럼 아무데서나 갑자기 ‘우아앙’ 하고 울어 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데나 쓰러져 잠들어 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무더위에 지치고 들려오는 세상의 소리에 실망하고 지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또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울 수 없고 잠들어 버릴 수 없는 것은 내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나는 아프게 아프게 조금씩 조금씩 겨우 겨우 어른이 되어갑니다.
“그대도 그러리라.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어른 되는 길이리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 봅니다.
2.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현대인의 소외된 모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묘사한 까뮈의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아무런 슬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자 친구와 어울리고 살인까지 합니다. 재판정에서 왜 살인을 했느냐고 묻자 햇볕 때문이라고, 햇볕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는 사형을 언도 받고,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의 저주를 받으며 죽고 싶다는 독백을 합니다. 자기 자신의 생애에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소외시키는데서 이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을 생각하며 이방인의 한 부분을 연상하는 것은 여름의 태양이 역시 너무 강렬하기 때문일까요?
한증막을 방불케 하는 찜통더위,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열대야 현상에 시달리며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이 팍팍 치밀어 올랐지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 뜨거운 태양 아래 얼마나 많은 곡식들과 열매들이 ‘일등열매’가 되기 위해 꿋꿋하게 참고 견딜 것인가?”
3.
음식과 장비가 든 배낭을 매고 7일 동안 243km를 달리며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이란 것이 있습니다. 낮 최고기온이 50도 이상인 혹독한 더위 속에 10㎏의 배낭을 맨 채, 모래 언덕을 발이 푹푹 빠지면서 달려야 하는데 단 한 걸음의 무게만 해도 천근만근이나 된다고 합니다. 다리는 고통으로 찢어지는 듯하고 매섭게 불어닥치는 모래 폭풍 때문에 앞선 동료의 모습도 보이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올해로 18번째인 대회가 지난 4월 아프리카 모로코 지역에서 열려 세계 30여 개국 661명이 참가했습니다. 이 악명 높은 마라톤 대회인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22명으로 구성된 한국인팀이 참가했고 또 완주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마라톤을 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낮에는 하루 최고 42㎞를 달리기도 하며, 텐트에 도착하면 사막의 가시덤불을 연료로 하여 끼니를 해결해야 하고, 발에 생긴 물집을 치료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피곤해 세수나 양치질은 엄두도 못 내고 밤에는 0도까지 떨어지는 추위에 벌벌 떨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연의 악조건에 더해서 이 대회의 경기 방식마저 사하라 사막만큼 가혹합니다. 10㎞ 간격의 체크 포인트에 제한시간 내 도착하지 못하면 자동 탈락하고 맙니다. 선수들이 맞바람을 맞으며 뛰게끔 코스가 짜여지고, 주최측에서 주는 것은 하루 9리터의 물과 베르베르인(사하라 사막의 유목민)의 텐트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왜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이런 힘든 경기를 하는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던가 아니면 극기를 위한 훈련으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삶 역시 이러한 어려운 경기의 연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어려움은 우리에게 사하라 사막 못지 않은 인내와 결단을 요구합니다. 지금 우리의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은 너무나 벅차고 힘듭니다. 앞에 놓인 장애물을 뛰어 넘어 새로운 길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힘이 필요합니다. 한 번 더 인내하고 한번 더 절제하고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뛰어가야 합니다. 그래도 안될 때에는 위를 바라봅시다. 그러면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분만이 줄 수 있는 힘과 격려를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4.
우리 조상들은 당장 보고 있는 풍경 또는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이 아직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이 분명한 2월 초순에 입춘 절기를 정해 놓고 ‘봄이 왔다!’고 선언했습니다. 하기야 2월 초순에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은 깊은 겨울이 분명하지만 눈을 잘 뜨고 귀를 잘 기울이면 얼음장 아래로 돌돌거리며 봄이 흘러가고 있고, 봄기운이 눈과 얼음으로 덮힌 대지 위에 스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조상들은 한 겨울 속의 입춘을 모든 절기의 한 처음으로 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불볕 더위가 한창인데, 도무지 이 더위가 물러 설 것 같지 않은 숨막히는 한 여름에 ‘가을에 들어섰다!’고 입추를 선언했습니다. 올해는 입추가 지난 8월 8일이었습니다. 땅에서 찬 기운이 솟아나 더위가 그치고 가을 기분이 완연해 지기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지만 분명한 것은 가을은 한여름인 입추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피부로 피상적으로 느끼는 계절은 아직 한여름이지만 눈을 잘 뜨고 온몸으로 대하면 우리는 이 한여름 가운데로 가을이 들어선 낌새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입추는 24절기의 열 셋째로 한해의 후반기를 사는 처음이 됩니다.
나는 한겨울 속에서 희망의 봄을 보고 한여름 속에서 생기를 주는 가을 바람을 미리 본 우리 조상들의 예지에 늘 감격합니다. 깊은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희망과 소생을 보는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여름 가운데 가을이 있습니다. 그대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 가운데서 오히려 추수의 기쁨을 희망하며 새 바람을 맞이한다면 그대는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더우니까, 더우니까
세상이 불타고 있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네
불꽃만 살아 나풀거리네
견디다 못해, 견디다 못해
마음이 나를 떠나네
알프스 산맥을 넘어가고 있네
눈 덮인 산을 타고 다니고 있네
나는 저 눈 속에 살고 있네
한여름에 겨울을 살고 있다네
<나의시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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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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