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밭 한구석 클로버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한번쯤은 네 잎 클로버를 찾아보았을 겁니다.
네 잎 클로버를 찾게되면 괜히 마음이 뿌듯해지고, 또 그 네 잎 클로버가 무슨 보물이라도 되듯이 아주 소중하게 책갈피 등에 보관하기도 합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운’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서 실수로 수많은 세 잎 클로버들을 뽑기도 하고 밟아 뭉개기도 합니다. 이렇게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짖뭉개거나 뽑았다 그냥 버린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우리가 무시하고 그냥 내버린 그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합니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 세 잎 클로버는 ‘행복’.
수없이 많은 행복 속에서도 행운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중에 <강도와 신경통>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집에 권총을 든 강도가 들어왔습니다. 그 강도는 깊이 잠들어 있는 주인을 깨워서 “손들어”하고 말했습니다. 집주인은 깜짝 놀라 벌벌 떨면서 왼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강도가 “오른손 마저 들어”하며 윽박질렀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머리를 숙이면서 “죄송합니다. 저의 오른손은 신경통이 매우 심해서 도저히 들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강도는 살벌했던 얼굴 표정을 지우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나도 신경통 때문에 이 짓을 하고 있소. 낮에는 일도 하지 못하고 밤이면 온 몸이 쑤셔서 잠도 못 자고 결국 권총을 들고 이렇게 강도 짓밖에 할 수가 없었소. 당신은 어떻게 신경통을 이겨 나갈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해서 두 사람 사이에는 신경통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가기 시작했습니다. 집주인은 “나는 이렇게 ○○약을 써서 밤이면 잠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신경통의 아픔과 고뇌를 위로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던 주인은 포근한 마음으로 안정을 되찾았고 오히려 기쁨마저 느꼈으며 그렇게 사납게 보이던 강도 역시 마음을 열고 주인과 기쁘게 대화하며 한밤을 지새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짤막한 오 헨리의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깊은 인간관계의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불행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은 상황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대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프고 연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서로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고 대화할 때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맺어지며 그 속에 바로 행복이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막상 무엇이 행복이냐, 어떻게 얻어지느냐 하고 물을 때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망을 다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물론 없을 것입니다. 독일의 어느 시인이 지은 시가 있습니다.
산너머 머나먼 곳에
행복이 있다 기에
벗과 더불어 찾아갔다가
아아 눈물을 머금고 돌아오다
산너머 머나먼 곳
또 머나먼 곳에
행복이 있다고들 말하기에
언제나 산너머에 있는 것 이것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행복이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이처럼 고생스럽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는데 무슨 행복이 있단 말인가. 행복은 남의 것이지 결코 나의 것은 될 수 없다’라고 자기와 행복과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행복이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인간관계 속에서 형성되어지는 것이며 각자가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을 누리려는 자보다 행복을 나누려는 자가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두들 행복을 만들고 나누기보다는 행복을 누리려고만 하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을 누리려는 자가 되기보다는 행복을 만들고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에 다닐 때 가까이 지내던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유머가 풍부하여 웃기기를 잘했습니다. 그 친구가 교실에 들어오면 학급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으며 때때로 온통 웃음바다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모임이건 그 친구가 불참하게 되면 쓸쓸해지고 허전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내 주변에, 우리의 모임 속에 한 사람씩만 있어도 어느 곳이건 웃음이 넘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귀기가 쉽습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을 만들고 나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공연히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는 험상궂게 입을 놀리고 근심스러운 표정,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가까이 하기가 싫어집니다.
그렇지만 항상 웃음이 있고 온유하며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으며 남의 약점을 돌보아 주려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은연중에 그를 대하기가 쉬워지고 항상 가까이 있고 싶어지며, 그 사람이 우리들 마음속에 기쁨과 평안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인관계를 가질 때 우리의 표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링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성숙해지면 성숙해질수록 그 사람의 인생관과 성품과 인격이 얼굴 표정에 나타나게 마련인 것입니다.
오늘 나는 어떤 표정을 나타내고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비춰지고 있습니까?
나는 행복을 누리려는 자입니까? 행복을 만들고 나누려는 자입니까?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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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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