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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라트라바가 1998년 디자인한 리스본의 오리엔테 기차역은 아무런 장식이 없이 순수한 구조와 재료의 특성을 통해서 기술과 감성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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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이력에는 언제나 세 가지의 직업이 적혀 있다. 건축가, 엔지니어 그리고 조각가. 자신을 건축가이며 동시에 엔지니어로 소개하는 사람이 있는지 혹시나 하여 필자가 받은 수백 장의 명함을 살펴 보았는데 단 한 명도 없다. 이것도 드문 일인데, 거기다가 조각가라니! 이러한 칼라트라바의 독특한 이력은 곧 그의 건축이 지향하는 바를 드러낸다.
건축과 조각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둘 다 만들어지기 위한 구조를 갖지만 건축은 그 안에 사람이 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조각은 외부에서의 감상이 중요하다. 조각이 건축의 상상력을 넘어설 수 있는 이유다. 만약에 건축가가 구조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건물을 디자인한다면, 조각가의 상상력과 버금가는 혹은 능가하는 작품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구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칼라트라바가 보편적인 구조 전문가와 다른 점은 구조미와 건축미를 성공적으로 결합했기 때문이다. 솔직하고, 단순하고, 명쾌한 칼라트라바의 작품은 매우 구조적이고, 미적이며 동시에 창의적인 공간을 지닌다. 그가 초기에 교량이나 탑 등과 같은 구조물을 디자인했을 때까지만 해도 공간과는 별개로 역동적인 디자인의 측면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디자인이 동시에 풍요로운 공간과 역동적인 도시 이미지를 창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졌다.
칼라트라바가 1998년에 디자인한 리스본의 오리엔테 기차역은 이와 같은 그의 독특한 특징을 잘 드러낸다. 높이 25미터에 달하는 60개의 거대한 철골 야자수 기둥과 노출콘크리트로 구성된 오리엔테 기차역은 아무런 장식이 없이 순수한 구조와 재료의 특성을 통해서 기술과 감성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그로 인하여 오리엔테 기차역은 전형적인 하이테크 건축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간다.
제품에 접목된 칼라트라바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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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한 극장의자, 장식용 스탠드, 1인용 간이침대. |
칼라트라바는 어려서부터 수공예와 장인정신을 존중하도록 교육받았다.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한 제품은 건축 못지 않게 이와 같은 그의 디자인 접근방식을 잘 드러낸다. 먼저 그가 1986년에 디자인한 극장 의자는 마치 조각품을 연상시킨다. Z자 형태의 검은색 받침 부분은 칼라트라바가 다리 디자인 등에서 즐겨 사용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빨강색 가죽으로 이루어진 등받이와 앉는 부분도 기능적이면서 동시에 곡선을 강조했다. 특히, 단일 구조로 바닥과 접하는 다리 부분을 V 자 형태로 디자인한 것은 기존의 상식에서 탈피하려는 칼라트라바만의 독특한 접근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칼라트라바의 독특한 개념은 1990년에 디자인한 장식용 스탠드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되었다. 190센티 가량 되는 스탠드는 극장 의자와 마찬가지로 Z자 형태의 구조를 가지며, 받침 부분은 V자로 디자인되었다. 이 스탠드는 선적인 특성을 강조했는데, 약 15도 가량 비스듬하게 기울어짐으로써 보다 역동적인 느낌을 발산한다.
2008년에 선보인 1인용 간이 침대는 보다 파격적인 구조적 특징을 드러낸다. 칼라트라바는 기존에 네 개의 다리에 의해서 지지되는 형태로부터 완전히 탈피해서 낫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곡선을 지닌 두 개의 지지대를 만든 후에 한쪽 끝에서 반대쪽을 두 개의 와이어로 연결시켰다. 마치 구조적 역학 관계를 설명하는 모델 같다고 할까. 이렇게 만든 다리 사이에 수평 지지대를 이용해서 침대를 끼워 넣었다. 자세히 보면 바닥은 인체 공학적으로 디자인되어서 매우 편안하게 누울 수 있도록 했다. 칼라트라바는 이와 같은 침대 디자인을 통해서 기존에 가구가 지닌 전통적 방식을 완전히 뒤엎는 개념을 선보였다.
건축과 디자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다. 그런데 칼라트라바의 건축과 디자인은 이와 더불어 높은 수준의 예술성과 수공예적 특성을 접목함으로써 기술적이며 동시에 감성적이다.
글쓴이
김 정 후 (건축가, 도시사회학자)
archtocity@chol.com
저서 : <작가 정신이 빛나는 건축을 만나다>(2005)
<유럽건축 뒤집어보기>(2007)
<유럽의 발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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