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에 드리워진 불황 그림자
지난 22일 오후 전남 광주 A백화점. 장마 기간이라 손님이 적을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심각했다. 지하 1층에 있는 식품 매장 외에는 고객의 발길이 끊긴 상태였다. 먼 발치에서도 손가락으로 고객의 수를 셀 수 있었다. 한 신사복 코너 점원은 “손님이 전혀 없다시피해 하루 하루가 무료하다”고 말했다. 이 백화점의 한 간부는 “별의별 판촉을 다 해봐도 매출이 안 올라 사실상 두 손을 든 상태”라며 울상이다. 그는 “서울이나 다른 지방 점포들보다 훨씬 더 장사가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소연 했다. 대표적 소비 도시인 광주 지역 불황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내세울 만한 제조업체가 빈약해 소비에 의존해 돌아가는 경제구조라 경기에 민감하다. 자영업자나 기업 모두 “물건이 안 팔려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 광주지역 상가마다 손님이 뚝 끊어졌다. 광주 금남로 한 지하 상가는 문이 잠긴 채 임대 안내표지판이 붙어 있다.
지난달 매출 감소율 전국평균의 4배… 전형적인 소비도시로 경기 심하게 타
◆매물로 나온 가게 즐비=서구 상무 신도심의 생선요리 식당. 저녁식사 시간인 데도 테이블 11개 가운데 손님이 앉은 곳은 3개에 그쳤다.
40대 초반의 주인은 “매출이 지난해 이맘 때보다 절반으로 떨어져 종업원을 5명에서 3명으로 줄였다”고 한숨이다. 숯불구이 음식점을 하는 정용훈(33)씨의 사정도 비슷했다. 그는 “인근에 지하철이 개통돼 새로 떠오르는 상권으로 꼽히는 데도 불구하고 문을 닫거나 내놓은 음식점·술집이 한둘이 아니다”고 귀띔했다.
광산구 우산동에서 20여평짜리 카페를 운영하는 김정숙(31)씨는 “손님을 한 팀도 못 받고 문을 닫는 날도 있다”며 “권리금을 낮춰 내놓아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고 자동차 매매시장은 썰렁하다. 하남 자동차매매 1단지는 2천여대의 차량이 빼꼭히 들어서 있다. 손님은 거의 눈에 안 띄었다. 중개상인 조은상(38)씨는 “차를 두 대 굴리던 집들은 한대로 줄이고 할부금이나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해 나오는 차는 쌓여가는데 이를 사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광주 지역의 상반기 중고차 판매량은 1만7천4백44대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4%가 줄었다.
백화점 매출 감소세는 전국에서 가장 높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지난 6월의 백화점 매출 현황을 보면 지난해와 비교해 전국 평균 4.6%가 감소했다. 하지만 광주 지역 백화점들의 감소율은 18.4%로 이의 네배가 넘는다. 부산(5.0%)·인천(12%) 등과 비교해도 훨씬 떨어진 수치다. 할인점 매출 감소율 역시 광주가 18.1%로 다른 지방보다 높게 나타났다.
산업자원부 유통서비스정보과 이경진씨는 “광주 지역 소비 경기가 올들어 줄곧 현격한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제조업 비중 낮아 경기 민감=광주는 제조업의 비중이 13.7%(고용인구 기준)에 불과한 전형적인 소비도시다. 실물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소비자의 구매심리가 얼어붙는다.
한마디로 개인 소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돈이 돌지 않는다. 광주의 최대 사업장으로 지역경제에 영향력이 큰 기아자동차의 경영부진도 지역경제 불황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올 상반기 판매실적은 4만7천6백35대로 전년 동기보다 46%나 감소했다. 이무형 총무팀 차장은 “재고(1만8천여대)가 많아 차를 세워 둘 곳이 없어 생산 라인 가동을 지난해보다 15% 축소했다”고 말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은 직원수가 5천6백여명이다. 시내 54개 협력업체 직원 1만여명을 포함할 경우 지역 제조업체의 고용인원(5만2천여명)의 30%에 이른다. 매출액(협력업체 4천5백55억원 포함, 2조7천억원)은 지역 제조업 총 생산액의 17%를 차지한다. 광주상공회의소 조사부 최화석씨는 “광주의 체감 경기가 경제 지표보다 훨씬 더 냉랭하다”고 걱정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