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를 놓고 중국이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지난 4월23일 베이징 3자회담을 전후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본격적 ‘중개자’로 발벗고 나선 중국 정부는 최근 미국의 대북봉쇄 압박이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자 이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관련국들과 접촉 빈도를 크게 늘여가고 있다. 7월2일 왕이 외교부 부부장이 워싱턴을 방문한 데 이어, 7월3일도 외교부 부부장 다이빙궈가 러시아를 찾아 ‘대국간 조율’을 마쳤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속내는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왜 북핵문제는 보도금지 당했나
지난 6월 말 중국 언론에 긴급 보도지침이 내려졌다. 한 중국 언론인의 말에 따르면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7가지 민감사항에 대한 보도금지령을 내렸다. 즉, 민감한 문제 보도는 모두 중국 관영 <신화통신> 보도 내용을 그대로 베껴쓰라는 지시였다. 이 언론인은 “중앙선전부에서 내려지는 ‘보도금지령’은 지금까지의 관례에 비추어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북핵 문제’ 포함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보도금지령 때문에 중국 언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도 공동성명 전문 공개를 빼고는 별도의 논평이나 분석기사를 거의 싣지 않았다. 한국 언론에서 노대통령의 미숙한 외교와 일관성 없는 발언을 두고 비판적 논조를 쏟아낸 현상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이었다. 중국쪽의 이런 자세는 중앙선전부의 ‘말’ 그대로 북핵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가를 잘 보여준다. 어떤 이는 덩샤오핑의 “말은 아끼고 행동을 많이 하라”는 ‘외교지침’이 작용한 결과로 보기도 한다. 다른 관측통은 ‘사회주의 형제국’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좋은 것’만 보도한다는 관례에 비춰 북핵 문제 보도 금지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당국의 ‘호의’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중국 정부로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조용히 물밑에서 행동을 많이 하는 게 최선의 전략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이런 행보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외교적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스인홍 인민대학 교수는 “북핵 문제는 올 들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외교적 위기이고, 중국 외교정책의 명운이 걸린 중대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애초 북핵 문제가 터졌을 때 중국은 끼어들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이라크 사태와 달리 당사자들이 중국의 국가이익 및 동북아지역 안보전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미국과 북한이기 때문이다. 스위엔화 상하이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소 교수는 “중국 정부는 애초부터 북핵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미국이기 때문에 북한과 미국 당사자간 대화로 풀 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중국 외교정책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국외교라는 점과 주변국들과 평화적 우호관계 유지가 핵심 기조이기 때문에 북핵 문제는 중국 정부에게 상당한 외교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싱가포르에서 나오는 화교신문 <연합조보> 3월26일치 논평에서도 “중국 대국외교의 중심은 미국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실질적으로 중국 현대화 발전의 중심 문제이며, 또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는 중심환경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중국과 북한은 관계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북한의 탈북자 문제만 해도 중국에 많은 외교적 골칫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북한의 열악한 경제 역시 중국에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또 북한의 강경 외교정책은 중국 당국에게도 국제적으로 많은 난처한 문제들을 안겨주고 있다. 현재 북한의 ‘핵위협’ 앞에서 중국은 또 한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국면에 직면했다“며 중국 정부의 곤혹스러운 입장을 대변했다.
“미국과 북한에
동시 협박 당하고 있다”
지난 4월 베이징 3자회담을 기점으로 중국 당국은 북핵 문제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태도 변화는 “미국과 북한에게 동시에 협박당하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중국이 감수해야 하는 문제는 비단 국제적 ‘체면문제’뿐 아니라 당장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 주변 안보환경의 변화다. 이것은 중국 국가이익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중국은 북핵 문제를 유발한 미국의 목적은 결국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미국 중심의 패권체제를 구축하려는 것과 북핵을 빌미로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해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만일 북이 핵을 갖게 될 경우 이로 인한 일본의 핵개발과 군사대국화, 그리고 주변국으로 파급되는 군비경쟁 등 이른바 ‘핵 도미노 현상’ 이다.
최근 일본이 ‘유사법제안’을 통과시키고 미국의 MD 구축에 적극 동의한 것은 중국이 우려하고 있는 사태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쥬펑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보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최근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일본의 일련의 행보들은 중국에 대한 전략적 도전이다. 이는 미래 중국의 안보능력 약화와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우려했다. ‘핵 도미노’가 야기할 중국 주변 안보환경의 변화도 우려사항이다. 북한이 핵공격 능력을 갖고 일본이 이를 빌미로 핵개발을 하면 중국 주변은 인도와 파키스탄을 포함해 온통 ‘핵 지뢰밭’이 되고 만다. 군비경쟁과 상존하는 전쟁위기 등은 중국이 더는 경제발전에만 매진할 수 없는 ‘비평화적 주변환경’을 초래하게 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MD가 구축돼 일본에 이어 한국까지 편입되면 대만 역시 자연적으로 MD에 편입되는 효과를 야기하기 때문에 ‘경제발전과 대만 통일’이라는 국가적 목표가 흔들리게 된다.
중국은 북핵을 빌미로 한 MD 구축과 동북아 패권의 장악을 노리는 미국의 목적이 결국은 ‘중국봉쇄용 협박’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다. 중국에게 북한이 아무리 ‘계륵’ 같은 존재일지라도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핵 문제는 북한이 역으로 중국을 ‘협박’할 수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우궈광 홍콩 중문대학 교수는 최근 발표한 글을 통해 “북한은 중국이 북한을 포기했을 때 얻어지는 대가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탓에 중국이 더 적극적 중재를 하도록 협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6월28일 <신화통신>에는 “중-조 변경 압록강 주변 대교 전면 수리 복구, 200만위안 이상 투자 예정”이라는 제목의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압록강 주변 대교란 지난 한국전쟁 당시 미국 폭격을 맞고 무너진 원래의 압록강 대교를 중국과 북한이 새로 ‘중-조 우호대교’라는 이름으로 지은 다리를 지칭한다. 언뜻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단신에 불과하지만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그것도 몇십년째 방치돼 오던 다리를 거액을 들여 전면적으로 다시 고친다는 소식은 예사롭지가 않다. 게다가 오는 7월27일 ‘정전협정 50주년’ 기념을 앞두고 나온 소식이어서 그 배경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조 우호대교 수리의 의미
중국 인터넷 매체 <문화선봉>은 7월8일치 논평에서 “중국이 중-조 우호대교를 수리 복원한다는 함축적 의미는, 첫째 1980년대 이후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이후 중-조 간에 발생한 견해 불일치를 원래의 우호관계로 회복한다는 것을 뜻하며, 둘째 전략적 관점에서 새로 수리 복원되는 대교의 탑재능력을 더욱 높임으로써 만일 새로운 한국전쟁이 생길 경우 중국이 더 큰 규모로 북한을 지원해줄 수 있다는 점, 셋째 국제사회에 중국은 절대로 북한에 대한 무력위협이나 침략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논평은 결론으로 “현재 중국은 경제발전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있기 때문에, 특히 평화적 국제환경이 필요하며 그 중에서도 주변환경의 안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중국은 절대로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직언’을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한국전쟁을 겪었던 원로세대들이 현 지도층을 향해 “더는 북한을 방치하지 말라”는 충고가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 변화는 현재 중국 입장에서 북한이 ‘무사’해야만 중국의 지역안보 전략 이익에도 유리하고 미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병풍’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