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팎에서 북핵 관련 온갖 설들이 다시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정찰위성을 통해 북한의 새로운 핵실험 장소를 발견했다느니, 북한이 연내에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느니, 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을 시작했다는 따위의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7월4일 “96년 김정일과 전병호(군수담당 당 비서)로부터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혀 북핵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다만 이들은 여전히 ‘누구로부터 얘기를 들었다’거나 ‘믿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모호한 간접화법을 사용하는 탓에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 7월1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 후보로 추대하는 제649호 선거구 선거자대회가 평양 전승광장에서 열렸다.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미 정보기관의 분석을 인용한 언론들의 보도 내용이나 주장들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윤영관 외교부 장관은 최근 “여러 가지 과학장비를 통해 계속 추적하고 있으나 아직 북한이 핵 재처리에 나섰다는 뚜렷한 징후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으며, 북핵 관련 정보를 취합하고 있는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도 “미국 정보기관의 평가가 너무 앞서가고 있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워싱턴발 정보들의 진실성 여부보다는 의도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는 듯하다.
과연 북핵의 진실은 무엇일까. 지금 분명한 사실은 누구의 말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핵개발은 워낙 비밀리에 이뤄지는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협정에 따른 엄격한 현지 사찰을 하지 않고서는 북핵이라는 판도라의 상자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설사 현지 사찰이 이뤄진다 해도 북한 당국이 전폭적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미 1980년대 말부터 북핵 의혹 제기가 있었고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사실 규명이 안 되는 현실이 이를 잘 반영한다. 또 사찰은 북한이 재처리한 플루토늄(PU)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는지 좀더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을 뿐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다음 단계의 기술 수준은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는 결국 미국이 첨단 관측장비를 총동원해도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음을 방증한다.
따라서 지금 나오는 북핵 관련 주장들은 대개 추정이나 제한된 정보에 근거한 것들로 봐야 한다.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면서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북한의 핵개발 단계는 이러하다. “1990년대 들어서 핵연료 확보에서 재처리에 이르는 일련의 핵연료 주기를 완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고도의 정밀기술을 요구하는 기폭장치 및 운반체 개발 문제 등으로 인해 핵무기 완성 및 보유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핵무기 제조원료인 플루토늄 추출능력을 고려할 때 북한은 한두개의 초보적인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핵폭발 실험을 했다고?
일반적으로 핵무기는 우라늄의 정제-농축-폭발-저장 등 일련의 과정(핵연료 사이클)을 거쳐 만든다. 하지만 핵연료 사이클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추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많은 나라들이 핵을 열망하면서도 핵무기 생산에 선뜻 나서지 못한 이유로 정치·기술적 문제 외에 경제적 문제를 든다. 그만큼 고급 기술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북한이 8천여개에 이르는 폐연료봉을 모두 재처리했다고 치더라도 실제 사용 가능한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느냐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제조하는 작업은 일련의 지속적 정밀공정이 필요한데, 이런 기술을 북한이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즉, 북한의 정밀공정 능력의 한계 때문에 실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주장이었다. 지금도 미 국무부는 북한이 IAEA에 신고한 양보다 많은 플루토늄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이나 핵폭탄을 만들 만큼 넉넉하지 않으며, 설사 필요한 양을 확보했을지라도 미흡한 기술 때문에 핵무기를 생산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견해 역시 추정일 뿐 진실에 얼마나 가까운지는 아무도 확인할 길이 없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북한의 핵폭발 실험 관련 정보들도 북핵의 진실 규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난 4월 말에서 5월 초 영변의 일부 재처리 시설 굴뚝에서 일시적으로 연기가 난 것을 탐지했고, 재처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클립톤 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에 곧바로 탐지할 수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이 내폭형 플루토늄탄보다 설계가 간단하고 ‘핵실험 없이도’ 사용이 가능한 포신형(Gun Type) 우라늄탄 개발을 위해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럴 경우 북한의 핵폭발 실험을 탐지하기는 불가능할뿐더러 실존 여부도 알 수 없다.
이라크의 전철을 밟는다면…
결국 북핵의 진실은 북한 당국, 그것도 소수 핵심 관계자만이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입을 계속 다물고 있으면 미 국내 강경파들이 북핵 관련 정보를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거나, 특정 정치세력의 입맛에 맞게 재가공해 정치적으로 이용해도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또 우방국의 정책을 변경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북핵 관련 정보는 종종 악용돼 왔다. 지난 10여년간 미국 정보기관이 근거 없이 북핵이나 미사일 위협 정보를 민감한 시기에 언론에 흘려 자신들의 정치적 실리를 취한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클린턴 정권 시절 공화당 신보수주의자들과 정보기관이 결탁해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부풀려 미사일방어망(MD) 구축의 명분으로 삼은 것이나, 텅 빈 굴을 지하 비밀 핵개발 시설이라고 언론에 흘려 대북 강경여론을 주도함으로써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제동을 건 일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정보 전문가들은 군사정보만큼 애매한 것도 드물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대북 정책수립의 핵심 근거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평가는 미국에서 늘 내부 논란을 빚어왔다. 그럼에도 정보기관들이나 군부가 만든 군사정보가 위력을 발휘한 이유는 무엇보다 다른 믿을 만한 대체정보를 제시하는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군사정보는 정보기관이나 군의 독점적 전유물인 만큼 고무줄처럼 가변적이고, 조작 가능성이 따르기 마련이다. 더구나 정치권이 입김을 불어넣으면 ‘정보의 정치화’는 더욱 심화된다. 가까운 예로 2002년 말 부시 정권의 국방부 지도부를 중심으로 포진한 신보수주의 강경파들은 중앙정보국에 이라크 침공의 당위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보 생산을 거세게 압박한 바 있고, 결국 이들의 입맛에 맞게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이 재조정되어 선제공격을 할 수 있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내세워 눈엣가시와 같던 후세인 정권 타도라는 목적은 달성했으나 정작 부시 정권은 국제사회를 설득할 이렇다 할 증거물을 제시하지 못하고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군사정보가 어떻게 왜곡되고, 어떤 섬뜩한 결과를 낳는지를 잘 보여준다.
문제의 심각성은 북핵 문제도 이라크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남북한이 미국 군사정보의 본질과 생산, 그리고 언론 플레이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이라크와 같은 비극에 부닥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