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류의 저항을 돌파할 신주류의 세 가지 카드… 전당대회에서 전면전 치러 행로 결정할 수도
정치권 밖의 신당추진 세력들이 단일대오를 형성했다. 이들은 민주당 신주류, 한나라당 탈당파, 신당연대로 신당 3두마차 체제를 이루었다. 신·구 주류의 첨예한 대립에 휩싸인 민주당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 민주당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신·구 주류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7월1일 저녁 국회 의원회관 한 사무실. 민주당 신당 창당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신주류와 구주류를 중재하겠다고 나선 한 중도파 의원이 구주류의 중진의원을 만나러 왔다.
“왜 우리가 만든 중재안을 거부하는 겁니까?”
“중재안도 따지고 보면 사실 국민참여경선으로 가는 것 아니냐. 결국 공천에서 우리들을 떨어뜨리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그동안 애써 관리해온 당원들과 지역 주민들을 그렇게 못 믿습니까?”
“지구당이 문제가 아니다. 서울에서 대학생들이 한 5천명 내려오고, 전국에서 노사모 회원들이 몰려와서 당원으로 등록한 뒤 국민참여경선이든 전당원경선이든 참여해봐라. 우리 같은 사람 떨어뜨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아! 그러면 지구당에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거주지 제한 규정을 두면 되지 않겠습니까?”(현재 민주당 당헌·당규로는 거주지와 관계없이 지구당 소속 당원이 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특정 지역 몇 군데는 얼마든지 날릴 수 있다.”
중도파 의원은 사무실을 나온 뒤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저의가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럴 수 있나? 결국 호남당 만들자는 것밖에 더 되나?” 중도파의 중재안을 신주류는 수용하고, 구주류는 거부하면서 둘 사이의 쟁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신주류는 중재안대로 국민참여경선이나 전당원경선을 통해 국회의원 후보를 공천하자고 하는 반면, 구주류는 그런 방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기간당원경선을 들고 나왔다. 박상천 최고위원은 “국민참여경선, 전당원경선, 기간당원경선 세 가지는 모두 실질적인 상향식 공천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각 지구당이 정하도록 하면 된다”고 말해 내심 기간당원경선에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드러냈다.
신·구주류를 만족시킬
뾰족수 없어
국민참여경선은 일반 국민이 50% 이상 참여하고, 전당원경선도 “누구든지 입당원서만 내면 투표할 수 있다는 것으로 오픈 프라이머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참여경선보다 오히려 개혁적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신주류 천정배 의원의 말이다. 하지만 기간당원경선은 꼬박꼬박 당비를 내고 상당기간 당 활동에 참여한 ‘정예’ 당원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것이므로, 그 수가 지구당별로 200~300명 정도로 제한된다. 이 때문에 신주류 한 의원은 “기간당원경선은 속보이는 짓이다. 내 지구당에서 내 식구만 데리고 경선하겠다는 것이다. 지구당 위원장에게는 가장 편하겠지만 국민들은 원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이는 박상천 최고위원이 석달 전 자신이 한 말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박최고위원은 지난 4월7일 당 개혁안 조정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당무회의에 이렇게 보고했다. “개혁안은 한국 정당 사상 획기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공직후보는 기간당원과, 기간당원과 동수의 국민참여 선거인단을 구성해 선출하고, 지구당 위원장은 기간당원을 포함한 전당원 대회에서 뽑기로 했다” 박최고위원 스스로가 국민참여경선을 ‘정당 사상 획기적인 내용’이라고 극찬한 뒤, 최근에는 “국민참여경선으로 할 경우 노사모·한총련 등 조직화된 세력이 개입하게 된다. 신주류 후보가 손쉽게 당선되는 것이다. 결국 신주류가 모조리 당을 석권해 민주당은 사실상 소멸하게 된다”는 논리로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국민참여경선은 지난해 민주당이 대선후보 선출과정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이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과거 3김시대에 보스가 틀어쥐고 있던 공천권을 일반 국민과 당원에게 돌려준다는 민주적 대원칙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도 취임 직후 가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일반 주민 50%가 참여하는 상향식 공천”을 얘기했다. 또 여야 대표가 6월30일 정치인과 학계·언론계·시민단체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범국민정치개혁특위’ 구성에 합의함으로써 국민참여경선은 정당법에 명문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중도파인 김근태 의원은 “처음에는 신주류 강경파의 오만이 문제이더니, 요즘은 구주류의 오만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구주류의 완강한 저항을 어떻게 뚫고 신당으로 나가느냐다. 이를 두고 신주류 사이에는 대략 세 가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는 마지막까지 대화와 타협을 주장한다. 정대철 대표와 김근태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대표는 “내가 대표로 있는 한, 절대로 분당은 없다”고 공언했고, 김의원은 신주류 모임에 나가서 “당 공천 방식 등 주요한 쟁점들을 합의하기 위해 조정위원회를 구성한 뒤, 거기서 나온 결론을 당무위원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도록 하자. 그 전에 신주류끼리만 신당추진기구를 구성하는 것은 분당으로 가는 길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분당이 될 경우 수도권에서 민주당과 신당이 경쟁하며 호남표를 나눠갖고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를 얻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차 있다.
대화와 타협 그리고
고사작전의 효력
그러나 구주류가 조정위원회 구성에 응하지 않고 있는데다, 신주류가 7월3일 신당추진기구를 공식 발족시켜 독자적으로 신당추진을 강행하기로 함에 따라 ‘타협안’은 일단 그 힘을 잃게 됐다. 구주류는 7월4일 모임에서 신주류와의 대화 필요성을 두고 논란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상천 최고위원은 대화에 나설 것을 주장했으나, 정균환 원내총무와 김옥두 의원 등 다수가 “접점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강경론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는 ‘고사작전’이다. 이해찬·이강래 의원 등이 주로 주장하고 있다. 이는 구주류가 중재안을 거부함으로써 ‘민주당 사수’ 등 각종 명분에도 불구하고 구주류의 요구가 ‘공천권 보장’이라는 점이 국민들 눈에 비치기 시작했고, 강원용 평화포럼 이사장 등 재야원로들이 시국선언을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 결집’을 촉구하는 등 당 밖의 동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시간이 갈수록 구주류가 고사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구주류가 2일 광주에서 ‘당 사수 결의대회’를 열어 지역감정을 자극한 것도 ‘자살골’로 여기고 있다.
이해찬 의원은 “구주류는 이미 정치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세력이다. 정통모임에 열댓명 모여 있는데 설사 이들을 공천해도 살아서 돌아올 사람은 한두명에 불과하다. 한두달 뒤면 자연적으로 정리된다. 그때 당무위원회에서 신당추진안을 통과시키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광주에서 3천명이 모였다는데, 최소한 5천만원에서 1억원은 들었을 것이다. 돈을 댈 사람은 박상천 최고위원과 정균환 원내총무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전국집회를 계속하다 보면 부도가 나게 마련이다”고 재정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의 맹점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신당추진 과정에서 ‘매듭’을 짓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금은 중도파의 상당수가 신당추진모임에 참여했지만 언제 어떻게 다시 상황이 악화돼 관망하는 자세로 돌아갈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럴 경우 신당 논의는 다시 지지부진해지면서 국민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신주류의 고사작전은 구주류를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칫 자해작전으로 흐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는 교착국면을 단칼에 끊을 수 있는 ‘탈당 카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쪽이다.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 등 이른바 신주류 강경파가 이런 태도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도파가 내놓은 중재안 정도의 개혁안으로는 환골탈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민주당 밖의 개혁세력이 대거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중도파의 중재안을 살펴보면, 지구당별 지구당 위원장 직무대행과 상무위원을 뽑는 선거인단 500명을 구성할 때 민주당원이 무조건 50%를 차지하도록 돼 있다. 나머지 50%의 경우 23개 지구당에서만 외부세력이 만드는 신당의 당원 50%로 충원될 뿐이고, 나머지 200여개 지구당에서는 국민참여로 이뤄진다. 따라서 23개 지구당에서는 민주당 지분이 50%에 그치지만 나머지 90% 정도의 지구당에서는 민주당 지분이 사실상 75%(국민참여의 50%를 민주당 몫으로 봤을 때)에 이르게 된다.
중재안을 만든 강운태 의원도 “전국 지구당 가운데 90% 정도는 무조건 민주당이 차지하게 돼 있어, 민주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라고 인정하고 있다. 또 이들은 고사작전을 주장하는 의원들과는 달리 구주류가 결코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아, 신당추진안의 당무회의 통과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9월 정기국회 전 일부라도 탈당해 한나라당 탈당파와 함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방식 외에는 다른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최대 약점은 현재로서는 함께 탈당할 민주당 의원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이젠 신당 논의를
매듭지어야 한다
결국 신주류의 세 가지 흐름 중 어느 하나로도 복잡한 상황을 타개할 대책은 되지 못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전당대회 결판론’이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전당대회를 소집해 신당 논의를 가부간 담판짓자는 안이다. 구주류쪽에서는 그동안 5500명의 대의원으로부터 ‘민주당 해체 반대’ 결의를 위한 전당대회 소집 요구서명을 받아, 임시 전당대회 소집요건을 갖춰놓고 있다. 신주류의 이상수 사무총장도 “전당대회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서로 탐색전에 그치고 있다.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자칫 전당대회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고, 전당대회 안건을 무엇으로 할지를 놓고 지루한 밀고 당기기가 벌어질 수도 있다. 마치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에 합의해놓고도 여론조사 문항을 둘러싸고 결렬 직전까지 갔던 상황과 비슷한 양상이 재현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당 논의의 앞뒤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전당대회 불가피론이 갈수록 힘을 얻을 것이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또 민주당에서는 전당대회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강구되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전당대회를 여는 이유가 당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한 것인 만큼 굳이 한자리에 모을 필요 없이 우편투표를 통해 대의원들의 의사를 묻는 것도 유력한 방법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