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5월, 강남 K유학원 원장 최모씨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식을 들었다. 2년 전 미국 위스콘신주의 한 4년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던 박모양(21)이 “미국에서 추방당하게 생겼다”며 다급히 이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박양이 지난해 2학기에 풀타임 스튜던트(Full-Time Student)가 채워야 하는 12학점을 다 이수하지 못하자 미 이민 당국이 ‘정식 학생 신분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박양의 학생비자(F-1)를 취소해버린 것. 결국 박양은 6월중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그동안 유학원을 운영해오면서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학생비자를 받아가기만 하면 미국 현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이민국이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요. 9·11 테러 이후로 점차 미국의 이민법이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어요.” 최원장의 말이다. 유학원 관계자들 역시 “박양처럼 일단 추방을 당하게 되면 미국 비자를 다시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 해프닝은 미국으로 유학 또는 연수를 떠나는 한국인들의 상황이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대학 학부 이상의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미국에 체류중인 한국 유학생 수는 2001년 8월 5만8457명에서 2002년 말 4만9046명으로 1만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미국 유학생 숫자가 이렇게 줄어든 데는 한국의 경기침체, 9·11 테러와 이라크전 등 여러 가지 배경이 깔려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 학생들에게 미국 학교의 문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9·11 테러를 계기로 창설된 미 국토안보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미국으로 들어오는 해외 유학생들이 개강 30일 이전에 입국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전까지는 개강 3개월 전부터 유학생들이 입국해 입학 준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또 학기나 학위 취득을 끝낸 유학생들은 60일 이내에 출국해야 한다. 이 발표가 나온 이후로 불안감을 느낀 유학생들이 방학이 되었는데도 귀국을 망설이는 사례도 있다.
유학전문가들은 어학연수의 경우, 미국이 아니라 캐나다로 떠나는 것이 대세라고 말한다. 9·11 테러와 이라크전으로 미국이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어학연수를 가는 젊은층과 부모가 모두 미국을 꺼리기 시작했다는 것. 대신 학비와 생활비가 미국의 3분의 2 정도 수준인 캐나다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어학연수생들이 미국을 기피하고 있다면, 대학원 과정의 유학생들은 오히려 미국으로부터 ‘기피당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유학준비 커뮤니티에서는 ‘예전 같으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시험점수를 받았는데도 미국 대학 어디서도 합격통지서를 받지 못했다’는 사연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국 대학원의 문이 좁아진 데에는 무엇보다 불경기라는 미국의 상황이 큰 변수로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경제의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로스쿨이나 MBA에 지원하려는 미국인 지원자들의 수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 자연히 유학생들은 더욱 치열해진 경쟁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심각한 문제는 미국 대학들이 굳이 한국 학생들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이라고 봅니다. 한국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80년대 말에는 미국 유학이 지금보다 훨씬 쉬웠습니다. 미국 대학들이 한국 학생을 받아 자국의 편으로 만들고 싶어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매력적인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는 비슷한 조건이라면 한국 학생보다는 중국 학생들이 더 구미가 당기는 선택일 겁니다.” 한 유학 전문가의 조심스러운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