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예방이냐, 지나친 사생활 감시냐. 길거리나 대중교통 시설 등 곳곳에 넘쳐나는 CCTV(폐쇄회로 TV)로 인해 영국 사회 전체가 지나친 감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생활 감시 행위에 대한 반대운동을 주도해온 ‘빅 브라더 워치’가 지방자치단체에 정보 공개를 요청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428개 지자체가 운영중인 CCTV 카메라는 모두 5만1천600개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1천개 이상의 카메라를 가동중인 자치단체가 레스터(2천83개), 노팅엄(1천120개) 등 5곳이나 됐다. 이들 지자체가 CCTV 설치와 운용에 들인 비용은 지난 4년간 모두 5억 파운드(한화 약 9천억원)에 달했다. 버밍엄의 경우 1천4390만 파운드, 웨스트민스터는 118만 파운드, 리즈는 87만6천 파운드를 쓰고 있다. 지자체의 CCTV 관련 예산은 4천121명의 경찰을 추가로 채용할 수 있는 규모다. 지자체가 운영중인 CCTV외에도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에도 CCTV가 끊임없이 돌아가고 중앙정부, 공공기관, 기업, 개인 등이 설치한 CCTV도 많다. 관련 업계는 영국 전체적으로 모두 400만~500만대의 CCTV가 가동중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경찰서장협의회는 발표를 통해 “범죄 수사에서 CCTV는 유전자 감식이나 지문 감식에 견줄만큼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자체 가운데 3번째로 많은 87만 6천파운드의 CCTV 예산을 쓰고 있는 리즈시의 피터 그루엔 시의원은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CCTV가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준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해 영국 폭동 당시 경찰은 CCTV 화면을 정밀 분석해 상가를 약탈하고 불을 지르는 등 폭동을 저지른 2천명이 넘는 시위대의 신원을 확인한뒤 추적해 기소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빅 브라더 워치를 이끌고 있는 닉 피클스 소장은 “많은 사람들이 CCTV 카메라가 범죄를 예방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이를 입증할만한 학술적인 연구를 보면 꼭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주차장 같은 곳에서는 CCTV 카메라가 유용하지만 길거리에서는 CCTV 보다는 가로등 불빛을 밝게 하는 것이 범죄 예방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피클스 소장은 “CCTV 카메라가 범죄에 대응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중요하지만 경찰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지자체는 쓰레기 투기, 애완견 배설물 처리 등을 감시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일에도 CCTV를 동원해 지나친 사생활 감시라는 지적을 받았고, 이주민이 많이 사는 지자체의 경우 이슬람 사원 인근에 카메라를 집중 배치해 지역 사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