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3일 최태원 SK(주) 회장 등에 대해 유죄 선고를 내림에 따라, 2세들에게 변칙적인 방법으로 상속·증여를 하고 다른 계열사로 부실을 떠넘기는 내부거래를 해온 재벌그룹의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유죄 판결의 의미=SK그룹 쪽은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잘못을 시인했으나 워커힐호텔 주식 맞교환과 JP모건과의 이면계약에 대해서는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날 세 가지 주요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특히 최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비상장사인 워커힐 주식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높게 산정한 뒤 SK C&C가 보유하고 있던 SK(주) 주식과 맞교환함으로써 막대한 부당 이득을 누렸다는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것은 적잖은 파장을 몰고올 전망이다.
흔히 비상장 주식값을 고무줄 잣대로 책정한 뒤 계열사간 거래를 통해 수십배의 차익을 2세들에게 안겨주곤 해왔던 재계 관행에 쐐기를 박는 판결이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은 잘못된 주식교환 계약에 따른 손해액 산정이 어려워 재산상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고 이득액에 따라 형량이 높아지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특경가법)의 배임죄를 인정하지 않고, 대신 형법상 업무상배임죄를 적용했다. 순자산가치를 적용해 이득액을 평가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파장=이날 판결은 서울지검에서 맡고 있는 ‘삼성 에버랜드 편법 상속 사건’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무엇보다 비상장주식 거래를 통해 부당이득을 누린 배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받은 만큼 앞으로 검찰 수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재계 뿐 아니라 검찰내 일부에서도 경제 사정이 어렵다거나 비상장주식 거래에 대한 판례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드는 등 삼성 수사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비상장사 주식거래와 관련한 판례가 성립되지 않아, 삼성 사건 수사가 속도를 내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일단 SK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나온 만큼 삼성 수사팀은 큰 짐을 던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