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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 칼럼> - 창피한 것 잊어버리기
코리안위클리  2003/06/19, 01:21:58   
다음 별에는 술고래가 살고 있었다. 이 별에는 아주 잠깐밖에 다녀가지 않았으나, 어린 왕자는 아주 마음이 우울해졌다.
“아저씨, 거기서 뭘해?”
빈 병 한 무더기와 가득 찬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술고래를 보고 어린 왕자는 물었다.
“술 마신다”하고 술고래는 몹시 침울한 안색으로 대답했다.
“술은 왜 마셔?”
“잊어버리려고 마신다.”
“무얼 잊어버려?”
어린 왕자는 벌써 그 술꾼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피한 걸 잊어버리려고 그러지.”술고래는 머리를 숙이며 자백했다.
“무엇이 창피해?”
어린 왕자는 그를 구원해 줄 생각이 들어 이렇게 물었다.
“술 마시는 게 창피하지!”
술꾼은 이렇게 말하고 다시는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어린 왕자는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그 별을 하직했다.
어린 왕자는 길을 떠났다.
그리고 어른들은 참말이지 괴상하고도 야릇하다고 생각했다.
(생 떽쥐뻬리의 <어린 왕자>에서)

이번 주간 편지를 두 통 받았습니다. 하나는 한국에 있는 아주 오래된 벗으로부터, 다른 하나는 영국에 있는 아주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한국의 벗으로부터 온 편지는 수 만리 타국에서의 생활을 위로하면서 ‘때때로 주저 않고 싶을 때가 있을 지라도 굳건히 묵묵히 가야할 길을 가다보면길이 보일 것’이라면서 멀리 있는 나를 위로하는 글이었고.
영국에 가까이 있는 지인으로부터는 자기의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요즘 들어 나의 행동과 그로 인한 심적 피곤함과 고통이 묻어 있는 나를 은근히 질책하는 것 같은 글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글을 읽고 저는 한없는 창피함을 느꼈습니다. 한국의 나의 벗은 요즘의 어려운 사업환경 속에서도 힘들더라도 진실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연한 결의와 함께 나를 위로해 주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고, 영국에 가까이 있는 지인은 자기의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거꾸로 그 고민을 통해 제대로 살지 못하는 나를 질책하며 ‘창피한 줄 알고 살아라’는 투의 질책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왜 바로 제 위치를 지키면서 살지 못하느냐?”는 책망까지도 느끼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정도의 창피함을 느꼈습니다.
물론 편지를 보낸 지인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이 단지 자기의 고민을 토로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글을 읽는 나로선, 이렇듯 혹독하게 다가오는 글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이 편지를 읽고 나서 우선 활활 타오르는 화로를 거꾸로 뒤집어 씌움을 당한 듯 한 충격을 받았음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견딜 수 없는 창피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쌩 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만난 술고래가 자꾸 생각나면서 견딜 수 없게 되어 지금 이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창피함을 느끼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창피를 문자 그대로 풀자면 어떤 일에 대하여 마음에 아니꼬움 때문에 부끄러워서 미쳐 뛰어 온 몸과 정신과 영혼이 찢어지는 듯, 헤쳐지는 듯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감정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가 창피해 하는 걸 본적이 있습니까? 사람이라면 마땅히 창피를 느껴야 할 대목에서 창피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마도 창피한 감정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성인이거나 철면피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마땅히 창피해야 할 대목에서 창피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철면피임이 분명합니다. 얼굴에 쇠가죽을 쓴 채 부끄러움이나 체면 따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구제 받을 수 없는 종자일 뿐만 아니라 이런 자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상하고 피곤해지고 죽어 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그가 정말 사람이라면, 그 누가 창피한 줄을 모르고 살겠습니까?
그러나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나의 가까운 지인은 나로 하여금 창피함을 반복해서 느끼게 하기 위해서 나에게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피한 것을 알았으면,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우고 눈을 바로 뜨고 위치를 바로 알고 지금의 너의 정체를 바로 알고 처신하라’는, 사랑의 권고가 그 속에 담겨져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창피하니까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신 게 창피하니까 잊어버리려고 또 술을 마시고… 이 말을 바꾼다면 사는 게 창피하니까 잊으려고 창피하다고 그러고 창피하다고 그러고 나니까 또 창피해져서 창피하다고 그러고, 아아, 창피함의 악순환이여, 아무런 변화도 없이 창피함으로 길들여져 있는 게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현실입니다.
각설하고, 우리가 겪는 사건 속에서 우리가 행하는 일들 속에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되거든, 그렇습니다, 나 자신이 먼저 문을 열고 그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창피한 것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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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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