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던 영국 왕실의 살림이 갈수록 쪼들리고 있다. 군주제 존폐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정부의 재정난까지 맞물리면서 왕실이 국가 세금을 축내는 ‘애물단지’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해 왕실은 자체적으로 경비를 줄이고 세금도 더 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맸다. 하지만 최근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화려한 결혼’을 계기로 비판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8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영국 왕실에 대한 국고 보조금 제도가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과거 영국 왕실이 국가에 부동산을 기부한 대가로 매년 고정적으로 동일한 금액의 보조금이 지급돼 왔지만, 앞으로는 부동산 수익률에 따라 국고 보조금이 달라진다. 재무부 관계자는 “연간 3900만 파운드(690억원)에 달하는 영국 왕실의 수입이 앞으로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왕실 보조금을 향후 4년간 14%포인트 정도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 왕실은 그동안 그야말로 화려한 생활을 해왔다. 찰스 왕세자는 2008년 한 해 여행비로 132만 파운드(약 27억원)나 펑펑 썼고, 20대 초반의 베아트리체 공주는 개인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 경비로 25만 파운드(4억4000만원)나 지출했다.
세금먹는 ‘애물단지’ 비난 여론 국민들 “특권의식 이젠 버려야”
그러나 2009년부터 왕실의 ‘쪼들리는 생활’은 시작됐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왕실 예비비가 바닥날 위기에 처하자 체면을 구겨가며 의회에 왕실 경비 인상을 요구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왕실의 총지출은 5780만 달러(710억원)로 2009년 6280만 달러(771억원)보다 8%포인트나 줄었다. 전용 헬기도 처분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찰스 왕세자의 개인 지출도 크게 줄였다. 왕실 시설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이마저 미뤘다. 앞으로 정부 보조금까지 줄어들게 되면 더 쪼들리는 생활이 불가피하다. ‘어려운 상황’은 최근 공개된 윌리엄 왕자와 결혼한 케이트 미들턴이 직접 장을 보러가는 평범한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미들턴은 지난 5일 평상복 차림으로 신접살림을 차린 웨일스 북서쪽앵글리시Anglesey 섬의 한 마트를 찾았다. 아우디 승용차를 직접 몰고 갔으며, 주변에 3명의 경호원이 동행하긴 했지만 왕실 가족이라고 보긴 어려운 평범한 모습이었다고 영국 언론이 전했다. 예전엔 왕위 계승 서열 2순위인 왕자의 부인이 직접 장바구니를 들고 다닌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왕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와 의회, 국민의 반응은 싸늘하다. 왕실의 고질적인 낭비벽이 재정적자에 큰 몫을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들은 “왕실이 세금으로 사치와 허영을 일삼는 시대는 지났다”며 지나친 특권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정부가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왕실의 지원금을 늘릴 가능성은 희박해 보여 앞으로 왕실의 사치문화가 사라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