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 50돌 맞아
반백년 세월 ‘영국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대관식(Coronation·왕관을 쓰는 공식 즉위 행사)을 거행한 지 반세기를 기념하는 2일, 수많은 영국인들이 버킹엄궁과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잇는 대로변에 몰려 여덟마리 말이 끄는 여왕의 황금마차를 기다렸다.
남편(필립 공)과 함께 마차를 타고 등장한 77세의 여왕은 50년 전처럼 길가에 도열한 신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웨스터민스터 사원으로 향했다.
영국인 어느 누구도 이라크전 참전이나 유럽 단일통화 가입에 대한 여왕의 의견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여왕은 통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여왕이 어느 꽃을 좋아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느 경마장으로 나들이 가는지를 궁금해 한다. 평소엔 그저 그렇게 자질구레한 일상을 벗어나지 않는 듯한 왕실의 존재는 잊을 만하면 이어지는 축제를 통해 거듭 되살아난다.
사실 여왕이 취임하던 당시 영국인들의 기대는 그 이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식량배급을 받으면서도 승전국이란 자부심을 앞세우던 영국인들은 엘리자베스 2세의 취임에 ‘엘리자베스 1세’ 당시의 영화를 기대했다.
이름은 같았지만 시대는 너무 달랐다. 제국의 유산인 왕실의 비중도 줄어만 갔다. 특히 1990년대에 왕자들이 각종 스캔들을 일으키며 이혼하고, 97년엔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비운에 숨지자 왕실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높아져 한때 왕실을 없애자는 논의까지 나왔다.
그러나 지난해 취임 50주년 행사를 치르고, 이어 국민적 사랑을 받던 여왕의 어머니가 숨져 추모분위기가 높아지면서 왕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많이 회복됐다. 지난해 말 조사 결과 영국민의 70%가 왕실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