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12개 나라의 공통화폐인 유로가 출범 4년여 만에 주요 통화 대비 가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유로 강세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유럽지역 경기침체의 골을 더 깊게 하는 동시에 세계 경제 전반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유로가 출범 당시의 가치를 회복했다는 점은 유로의 지위 강화를 바라던 유럽으로선 평가할 만한 일이지만 유럽 경제의 기초여건 개선과는 무관한 것이어서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지난 1년 사이 유로 가치는 달러에 대해 27%나 급등하는 이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의 유로 강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종결로 기대했던 미국 경제의 회복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자금 흐름이 미국 대신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유로 수요가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유럽도 경기 침체가 지속되기는 마찬가지지만 미국보다는 유럽 쪽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
여기에 최근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의 달러 약세 허용 발언은 빌 클린턴 행정부 이후 미국이 줄곧 견지해온 ‘강한 달러’ 정책의 사실상 포기로 간주되면서 유로 강세를 가속화시키는 구실을 했다. 유로지역 금리가 미국보다 높아 미국에 투자하던 이들이 투자처를 유럽으로 옮기는 것도 유로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현재 유로지역 기준금리는 2.5%로 미국의 1.25%보다 두배나 높은 상태다.
유로 강세는 해외시장에서 유럽산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려 유럽 기업들에 매출 감소를 초래하고 있다.
유럽은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7%로 미국(11%)·일본(9%) 보다도 상대적으로 높은데, 수출이 차질을 빚을 경우 유럽 전체의 경기회복에도 악영향을 주게 된다. 유로지역은 지난 1/4분기 경제성장률이 0%를 기록했고 독일 등 일부 나라는 마이너스 성장을 해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증폭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유럽중앙은행이 다음달 5일 기준금리 인하조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 조처만으로 유로 상승세를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기회복으로 달러 수요가 는다면 유로 강세가 한풀 꺾이겠지만 미국 경제는 올해 후반기에나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HSBC은행은 달러당 유로 환율이 내년 말 1.35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유로화 가치가 27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사상 처음으로 유로당 1.19달러를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