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공원에 가면
향기 나는 길이 있네
길게 줄지어 선 마로니에 나무는
향기 나는 길을 만드네
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바람의 길을 만들고
바람은 새들의 길에 앉아
꽃들의 길을 만들고
꽃들은 새들의 길에 앉아
향기 나는 길을 만드네
나는 그 길을 걸어가네
노래하며 걸어가네
언제쯤,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나의 길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나의 시 ‘향기 나는 길’>
대학교 다닐 때 우리보다 나이가 서너살 많은 결혼을 한 동급생 학우가 한 분 있었습니다. 이 분은 스물 넷인가 다섯인가에 좀 일찍 결혼을 했습니다.
자연히 결혼하지 않은 우리는 호기심이 나서 자꾸 질문을 했습니다.
“결혼한 것이 어때요?” “결혼한 기분이 어때요?”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총각인 우리는 결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결혼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자꾸 물어봤습니다.
나도 한번은 그 분에게 “결혼하니까 어때요? 얼마나 좋아요?” 그랬더니 그 분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참 결혼하니까 이상해, 결혼하기 전에는 둘이 만날 때 그 입술이 어찌 그리 예쁜지 무슨 말을 해도 예쁘고, 먹는 것도 예쁘고, 삐쳐도 예쁘고, 웃어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다 예쁘더랍니다.
그런데 결혼해 가지고 몇 개월 같이 살다보니 그 입술이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더랍니다. 입술뿐 아니라 그렇게 예뻐보이던 얼굴도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고 ‘왜 연애할 때는 그렇게 예뻐 보이고 그렇게 좋아 보였을까?’ 그것이 이해가 안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 아내의 입술을 갑자기 성형 수술을 해서 안 예뻐졌겠습니까? 금방 몇 개월 사이에 늙어서 안 예뻐졌겠습니까? 입술은 그 입술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변하고 내 생각이 변하고 내가 변화되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사랑이 불탈 때는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내게 무엇을 잘못했을 때도 그 잘못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라지 않아도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고, 더 주고 싶고, 주어도 주어도 부족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변하면 상대방의 하는 일들이 일일이 판단되어집니다. 그러니 자연히 허물이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상대방은 전혀 변한 게 없습니다. 사랑으로 잠시 변한 내가 본래대로 돌아온 것뿐입니다. 다만 전에는 사랑에 모든 것이 가리워졌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변해서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기 전에 내가 변하고 내 사랑이 변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가정 문제를 연구하시는 분이 다음과 같은 앙케이트를 만들어 가지고 다음의 일곱 가지 질문 중에 “그렇다” 는 대답이 많은 사람은 반성을 하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첫째, 부부가 식당이나 극장을 갈 때 배우자 의견보다는 내 의견대로 영화를 선택하고 음식을 선택하는가? “그렇다” 그러면 그것을 반성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상대방이 말할 때 잘못한 것을 금방 찾아내고 고쳐주고 긍정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에 부정을 많이 하는가?
세 번째, 상대방이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상대방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면 자존심이 상하고 무안을 주고 꼬투리를 잡는가?
네 번째, 부부싸움을 할 때 이길 때가 질 때보다 더 많은가?
다섯 번째, 부부 싸움을 한 후에 내가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상대방이 말을 거는 경우보다 적은가?
여섯 번째, 배우자의 코고는 소리나 입냄새나 급할 때 배우자의 칫솔을 쓰는 것을 역겹다고 생각하는가?
일곱 번째, 부부가 함께 차를 타고 갈 때 나만 안전벨트를 매고 가는가?
이 일곱 가지 질문 중에서 세 개가 ‘그렇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일주일 정도 반성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일곱 개 중에 다섯 개가 ‘그렇다’ 하는 사람은 상당히 이기적이고 잘못된 사랑을 하고 있으니 ‘한달 정도 반성을 해라’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일곱 개 중에 전부가 그렇다면 그것은 사랑 못 받을 아주 이기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랑의 중병에 걸려있는 사람이니까 ‘철저하게 반성을 하고 모든 의식을 바꿔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역시 이 글을 쓰면서 사랑의 중병에 걸려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열정의 척도가 아니고 또 싸움의 척도가 아닙니다. 사랑의 본질은 그 사랑이 타오르는 불꽃 같든지 은은한 화롯불의 숯불 같든지 그 어떤 형태든지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본질은 양보 희생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이 희생과 배려와 양보가 없다면 아무리 날마다 뽀뽀를 하고, 아무리 날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사랑의 고백을 하고, 아무리 날마다 상대가 좋아하는 무엇을 사다준다고 한들 그것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산된 사랑, 포장된 사랑입니다. 뭔가 뒤에 내막이 있는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희생이 있고 배려가 있고 양보가 있다면 그 사랑은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하는 사랑의 고백을 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진짜 참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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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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