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정신적으로 민감한 수험생들이 최상의 상태로 시험을 치게 도와줄 필요가 있는데 법원은 수험생의 정신적·육체적 안정을 해친 경우 위자료를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홍모(19)군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2007학년도 수능시험을 봤는데 감독관이었던 김모 교사는 홍군의 답안지에 확인 날인하다 실수로 감독관 확인란이 아닌 결시자 확인란에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김 교사는 3교시가 끝나고 나서 홍군을 고사본부로 불러 쉬는 시간에 답안지를 재작성하게 하고 4교시 시작 전에 그를 돌려보내 나머지 과목에 응시하게 했다.
홍군은 수능 모의평가에서 전 과목 모두 1등급을 받는 등 평소에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으나 이날 시험에서는 1∼3교시는 모두 1등급이 나온 반면 4교시 과목은 4과목 가운데 2과목에서 2∼3등급을 받았다.
시험을 망친 그는 당초 목표했던 서울대 의과대학 대신 같은 대학 자연과학부에 지원했지만 불합격해 재수하게 됐고 위자료와 재수 비용 등 4천3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국가와 김 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단독 최철민 판사는 이 사건에 대해 “국가는 최군에게 위자료 8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 교사가 감독관으로서 주의를 다하지 않아 아무 잘못이 없는 홍군이 답안지를 재작성해야 했는데 이것이 4교시 시험에 모종의 영향을 미쳤고 그가 시험을 망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등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는 것을 경험으로 미뤄 알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감독관은 공정한 시험이 되도록 통제할 책임 외에도 미성년자인 응시생이 외부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실력만으로 시험을 볼 수 있게 도와줄 의무도 있다”며 “다만 고의로 감독관의 임무를 위반한 것은 아니므로 김 교사의 배상책임은 없고 그를 고용한 국가가 대신 배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험 당일이 아니더라도 수험생의 실력 발휘에 영향을 주는 사고 등을 낼 경우 치료비 외에 위자료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앞서 같은 법원은 2004학년도 수능시험을 약 2개월 앞둔 시점에 공사현장 인근을 지나다 굴착기에 밀려 넘어진 부품에 다리를 다친 이모(당시 18세) 씨가 건설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위자료 900만 원과 치료비 등 1천37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2006년 3월 판결해 확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