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인근 오렌지카운티에서 남편과 함께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이모(61·여)씨는 이달 초 귀국해 서울 서초동 친정에 머물고 있다. 친정과 가까운 곳에 있는 아파트나 고급 빌라를 사기 위해서다. 이씨는 “은퇴 후 한국에서 거주할 집을 사고 싶었는데 환율이 오르고 집값은 떨어진 지금이 적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원화 대비 달러와 엔화의 가치가 크게 상승하고 국내 집값 하락세가 두드러지면서 국내 주택에 눈독을 들이는 해외 교포들이 늘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 입장에서 보면 요즘 서울 강남권 아파트값은 2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2006년 11월 시세에 비해 아파트 가격은 20~30%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은 2년 전 940원대에서 1320원대로 40% 올라서다. 예를 들어 한 교포가 2년 전 13억원짜리 국내 아파트를 샀다면 달러 기준으로 139만 달러를 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집을 10억원, 달러 기준으로 하면 74만 달러에 살 수 있다.
도곡동 정수지 공인중개사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와 지금 급매물을 사는 게 좋은지 아니면 조금 더 기다리는 게 나은지 문의하는 교포가 최근 많아졌다”고 전했다.
분양 중인 아파트를 알아보기 위해 모델하우스에 전화하는 교포들도 있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서울 강북에서 살다 미국으로 이민간 교포들 가운데 서울 뚝섬에 짓고 있는 주상복합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더러 있다”고 말했다.
주택 분양 업체들은 해외 교포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만 1500여 명의 부동산 중개사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부동산전문업체 뉴스타그룹의 남문기 회장은 “서울·수도권 20여 개 주택사업지 관계자들로부터 미분양 물량을 해외 교포들에게 매각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금융권도 국내 부동산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달 초 미국 동부지역 교민들을 대상으로 국내 부동산 투자 전망을 주제로 한국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신한은행도 지난달 말 미국·캐나다에서 투자설명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아직은 ‘입질’ 정도로 해외 교포들이 실제로 국내 부동산을 매입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부동산팀 박합수 팀장은 “미국의 경기와 부동산시장이 극도로 침체돼 있어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교포가 적지 않다”며 “거액을 들여 국내 부동산을 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금 여력이 있더라도 국내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기다리며 매입 시기를 저울질하는 교포도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