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들도 인간인 이상 노골적으로 전쟁 옹호론을 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지난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시간이 없다고 경고했을 때 전쟁은 이미 불가피한 수준을 넘어 초읽기에 돌입한 듯했다.
그리고 이제 관광·기술업계를 비롯한 많은 부문의 경제인들은 어차피 불가피한 전쟁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는 불안 요인을 조속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일의 최대 여행업체인 TUI의 니콜라이 유켐은 “야비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전쟁이 고통없이 신속하게 끝날 수 있다면 우리 여행업계는 전쟁 소식에 만세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관점의 전쟁 옹호론 뒤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추악한 장기전을 예상해 지나치게 움츠리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유가에 배럴당 약 5달러의 ‘전쟁 프리미엄’이 붙고, 소비심리가 냉각되고 있으며, 대출금리가 오르고, 리스크가 높은 주식 대신 금 같은 안전한 투자대상이 부상하는 것은 사람들이 최악의 사태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이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들은 전쟁 발발 소식을 환영할 것이다.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전광석화처럼 기선을 제압하면 유가가 하락하고 주가가 반등하면서 소비자 신뢰지수 및 구매심리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사실 지난 걸프전 때도 연합군의 신속한 선제공격 후 하루만에 유가가 배럴당 32달러에서 21달러로 하락했다. 사상 최대의 1일 하락폭을 기록한 당시의 유가 하락은 1990년대 경제호황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 유가가 다시 한번 배럴당 30달러선을 돌파한 가운데 연합군이 신속하게 승리할 경우 당시의 전례가 재연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 웹사이트 Economy.com의 마크 잔디는 “독일·프랑스·멕시코·일본 등이 확실히 모두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이는 이라크 전쟁 전망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이 각본대로 진행되면 지금까지 증폭된 긴장이 일시에 해소됨과 동시에 세계 경제가 신속하게 반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적 관점에서 전쟁이 평화보다 더 큰 이득을 가져오리라는 주장 뒤에는 막강한 지지세력이 있다. 우선 지난해 11월 골드먼 삭스·도이체방크·살로몬 스미스 바니 등 대형 투자은행에 소속된 일단의 경제학자들은 네가지 전쟁 시나리오에 따른 유가 및 소비자 신뢰지수와 기타 변수들의 잠재적 동향을 예측했다. 그들은 연합군이 신속하게 승리를 이끌어낼 경우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때보다 더 강력한 성장 촉진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런던에 기반을 둔 기업 간부들의 모임인 ‘경영인협회’(IoD)도 지난주 이라크 전쟁이 신속하게 일단락되면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로 인하되고 올해 주가가 전년 대비 5% 상승하면서 전세계 경제 및 소비자 신뢰지수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경제적 관점에서 단기전은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때문에 전쟁이나 (이라크에서의)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보다 훨씬 큰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제 3월 이전에 전쟁이 일어나면 유가 하락이 뒤따르고 6월부터는 세계 경제가 전반적인 상승 기조로 돌아설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국제 투자가들 역시 전쟁이 일단락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UBS워버그 증권사의 국제경제 전문가 폴 도너번은 “사람들은 불확실성의 정체에 대해 확신을 못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시장이 이렇듯 요동치는 것도 불확실성의 실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예컨대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아치우는 이유는 이라크 사태에 대한 우려 때문인가, 아니면 지난 2년간의 증시폭락으로 4조달러 이상을 날린 후 마침내 인내력이 바닥났기 때문인가?
골드먼 삭스의 수석 경제 전문가 빌 더들리는 미국 투자자들이 단순히 전쟁 발발 가능성 때문에,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해 신속히 끝날 것이 확실한 전쟁 때문에 주식을 투매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문제는 사람들이 주식을 계속 매도하고 있는데도 그 이유가 이라크 사태 때문인지, 아니면 시장의 기초 자체가 허약하기 때문인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신속한 전쟁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요인들 중 한가지 요인만을 제거하는 게 될 것이다. 지금 세계 경제계를 달구고 있는 또 하나의 쟁점은 현재의 약세 증시에 전쟁 요인이 이미 반영됐는가 하는 문제다. 만약 그렇다면 전쟁 발발시 주가는 오름세를 타겠지만 반대로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면 전쟁 발발시 주가는 폭락할 수 있다.
유럽 투자자들을 위해 11억달러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한 홍콩 펀드매니저는 아시아를 비롯한 신흥시장은 지난해 세계 평균 이상의 실적을 올렸지만 올해는 전쟁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전에는 전쟁 요인이 이미 증시에 반영됐다고 봤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주가는 30% 정도 하락할 것이다. 현재 증시는 관망 속 보합세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엇갈리는 전망 속에서도 모두가 동의하는 한가지는 전쟁이 신속하게 끝날수록 신흥시장들에 더 유리하다는 점이다.
각국 정부들도 어차피 치러질 전쟁이라면 신속하게 마무리되기를 기대하는 가운데 전쟁이 경제에 미칠 여파에 대비하고 있다. 중동산 석유에 대한 의존도와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는 전쟁으로 특히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기름값은 오르고 대미 수출은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조용히 석유 보유량을 늘리거나,(말레이시아와 태국의 경우) 전시에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심리가 얼어붙을 것에 대비해 내수 부양책을 모색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수석 경제학자 이프잘 알리는 이미 전쟁 공포로 중국을 제외한 모든 아시아 국가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급감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으며 이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전쟁 충격파에 대응하기 위한 입지가 좁은 편이다. 브뤼셀 소재 사회경제문제 연구소인 CEPS의 대니얼 그로스 소장은 가뜩이나 침체된 유럽시장에서 유럽연합(EU)의 고세율 및 재정지출 상한선 정책이 수요를 더욱 억누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통 유럽중앙은행(ECB)은 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지만 고금리 기조는 경제회복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에 ECB는 고민에 빠져 있다. 지난주 볼프강 클레멘트 독일 경제장관은 2003년 독일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을 단 1%로 전망하면서 이는 이라크 전쟁이 장기적으로 미칠 ‘예측 불가능한 부정적 효과’는 감안하지 않은 수치라고 덧붙였다.
사실 외교적으로는 전쟁 반대 입장이 가장 확고한 독일에서조차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빨리 끝내는 것이 가장 좋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도이체방크 런던 지사의 수석 경제전문가 마크 웰스는 개전이 6개월 연기될 경우 유가 상승만으로도 유로존의 경제성장이 0.6%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군사행동이 연기될 경우 그 대가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전쟁이든 오래 끌 경우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2차대전 때는 미군에 군수물자를 제공하기 위한 공장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미국이 대공황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1930년대 이래 주가가 최악의 상태에 있는 지금은 유사한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방위산업 관련 주가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방위산업체들의 상당수가 타격을 입은 항공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1차 걸프전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몬트리올 BCA 리서치의 경제전문가 폴 퍼킨스는 지적한다.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레이시온만이 자사에서 생산한 크루즈 미사일의 활약상이 TV에서 방영된 덕에 주가가 올랐을 뿐이었다.
단기전 시나리오의 경우도 전세계적인 경기회복이 뒤따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일본의 악성채권 문제에서부터 독일의 노동시장과 미국의 거품붕괴 후유증 사태에 이르기까지 전세계를 괴롭힌 최악의 문제들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나기 전부터 존재해 왔다. 이라크에 대해 속전속결로 승리를 거둔다 해도 그런 문제들이 완화될 것 같지는 않다.
한가지 중요한 경제지표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의 소비자 신뢰지수가 지난주 9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을 때 분석가들은 이라크 사태를 그 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소비자 신뢰지수는 이라크를 감시 대상으로 만든 9·11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 금요일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에게 이라크 사태는 일자리·주택·주가보다 관심이 떨어지는 사안이었다.
경기회복에 대한 전세계의 희망은 여전히 미국에 달려 있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의 사기는 떨어져 있다. Economy.com의 마크 잔디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전쟁 공포가 아니라면 연간 5백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기술(IT)에 대한 투자는 거품 붕괴 후 2년째 줄어들다 지금은 아예 정체 상태다. 투자자들은 IBM·마이크로소프트·인텔 같은 안전한 대기업에만 의지한다.
브로드뷰 투자은행의 브루스 후버에 따르면 미국과 EU의 지난해 기술 부문 투자는 거품 붕괴 이전인 98년에 비해 60%(2천9백60억달러)나 줄어들었다. 후버는 그 이유를 이라크 사태를 지칭하는 “지정학적인 불확실성”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그 역시 이라크의 정권 교체로 IT업계 불황이 어느 정도 치유될 것이라고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쉽게 이긴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전쟁으로 치닫는 요즘 분위기에서 기억해둬야 할 부분이다.
뉴스위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