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먹을 만하면 공직자의 논문 표절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러다가 온 국민이 학술논문에 관해 전문가가 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정권마다 교수 출신을 고위직에 많이 임명하다 보니 생긴 웃지 못할 현상일 게다.
이전에는 문제조차 되지 않던 잘못이 정치 쟁점으로까지 부각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윤리적 잣대가 그만큼 엄격해지고 있는 징조로 해석하고 싶다. 그렇지만 ‘표절’을 일상적 관행처럼 일삼으면서도 비판에서 비껴나 있는 집단이 있는데, 바로 한국 기자들이다.
그동안 여론의 표적이 된 표절에는 엄격히 말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가 쓴 글을 다른 곳에 ‘재탕’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글을 내 것인 양 가로채는 행위다. 기자들이 흔히 저지르며 윤리적 논란이 되는 오류는 바로 나중의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요즘엔 언론사마다 정식 뉴스를 내보내기 전에 인터넷에 기사를 먼저 올린다. 일간신문의 인터넷판 기사를 자세히 보면 작성자가 ‘연합뉴스’로 된 기사가 많이 보인다. 그런데 정작 다음날 아침 배달된 지면에는 버젓이 자사 기자 이름을 달고 나와 있는 게 아닌가. 두 기사를 대조해 보면 인용을 조금 덧붙이거나 문장을 조금 가필한 정도에 그치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약간 ‘화장’만 해서 자사 기사로 둔갑시키는 사례는 외신기사에서 특히 많이 보인다. 2002년엔가 한국언론재단이 국내 신문 국제뉴스의 출처/작성자 비율을 분석한 적이 있다. 1995년도 조사에서는 국제부 기자가 쓴 기사가 신문마다 적게는 2%, 많게는 16% 정도에 불과했는데, 이게 불과 몇 년 만에 27%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반면에 특파원 기사나 특히 서구 뉴스통신을 출처로 밝힌 기사는 대폭 줄었다. 잘 알다시피 이 기간에 신문사마다 국제 부문의 취재 인력을 대폭 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사의 진정성에 의혹의 눈길을 보낼 만하다.
다른 언론사나 통신사를 출처로 밝히는 일을 지나치게 꺼리는 관행은 심각한 문제다. 언론사마다 교묘한 베껴 쓰기가 관행화하다 보니, 특종기사조차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일부 기자들만 제외하면 특종기사가 누구 것인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풍토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는 기자와 언론이 대접받기 어렵다. 기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신문사마다 그동안 기사 실명제를 도입해 정착 단계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오히려 표절을 조장하는 온상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학술적 저술에서 통용되는 윤리적 잣대를 언론에 적용하면 곤란하다고 기자들은 강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처럼 엄격한 잣대야말로 바로 우리 언론이 그동안 쉴 새 없이 외쳐대던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닌가? 전통적 언론들이 관행에 안주하는 동안에도 여론 형성의 무게중심은 인터넷으로 빠르게 옮아가고 있음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번지는 뉴스는 신속하고 영향력이 크지만, 무책임하고 허무맹랑한 부분도 많아 전통매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올드 미디어인 신문이나 방송이 살길은 신뢰와 권위를 회복하는 데 있다. 똑같은 정보라도 시민들에게 신뢰를 주려면 먼저 윤리적으로 떳떳해야 한다. 남의 글과 지식에 합당한 크레디트를 주는 일은 언론 윤리의 첫걸음이다. 무책임하게 편의대로 베껴쓰던 어제의 관행을 지금은 버려야 한다.
임영호 /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