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세브란스병원이 1983년 병원 설립 당시 독일정부로부터 받은 차관 `‘1천500만마르크(한화 45억원)’를 25년 만에 모두 갚았다.
이 병원이 독일정부에 갚은 차관이 의미를 갖는 것은 당시 차관을 얻기 위해 꽃다운 청춘의 한국인 간호사들이 `‘생면부지의 땅’ 독일에 파견되는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76달러로 당시 UN가입 120여개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었다. 당시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각국에 차관을 요청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국정부는 독일(당시 서독) 정부로부터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들을 보내는 대신 이들의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가 독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는 조건으로 독일에 보낸 간호사는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총 1만226명에 달했다. 이들 중 5천여 명은 아직도 독일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파독간호사들은 1970년대 들어 그 수가 급격히 줄게 됐고 이 간호사들이 귀국할 경우 국내 재취업 등이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974년 독일 연방공화국 수도 `‘본’에서 한독 정기각료회담이 열렸고 독일정부는 귀국하는 파독 간호사들의 국내 취업을 위해 독일에서 장기저리 차관을 제공, 우리나라에 병원을 건립하는 방안을 제시됐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거쳐 영동세브란스병원은 1978년 서독재건은행으로부터 1천500만 마르크를 빌리게 됐다. 금리는 연 2%의 저리로 10년 거치 20년 상환이 조건이었다. 영동세브란스병원은 이 돈으로 당시 허허벌판이던 지금의 강남지역에 병원을 지어 현재의 거점병원으로 육성했다.
영동세브란스병원은 9일 로베르트 바스 주한독일대사와 재독한인간호협회 소속 파독 간호사 25명을 초청해 개원 25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병원측은 또 파독 간호사들에게 감사패와 기념품을 전달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재독한인간호협회 오성옥 부회장은 “독일에서 청춘을 보낸 한국 간호사들의 노고를 잊지 않고 기억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노베르트 바스 주한독일대사는 “독일은 한국과의 특별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 독일이 도움을 준 영동세브란스병원이 오늘날 이렇게 훌륭한 병원으로 성장해 줘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