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의 장관 입각으로 공석이 된 주중, 주일 대사의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유엔을 비롯한 다른 나라 공관장(대사) 인사도 연쇄적으로 미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 핵 문제와 정상외교 등 주요 외교업무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정치권과 외교통상부 주변에서는 총선 낙선자나 공천 탈락자 등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대사 인사가 미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당장 6자 회담 수석대표인 천영우 평화교섭본부장 후임에 김숙 제주 자문대사가 이미 내정됐음에도 김 대사는 1일 서울에 온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와의 공식 협의에 나서지 못했다. 또 21일로 예정된 한-일 정상회담이 주일대사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비정상적 상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대사 인사권을 쥐고 있는 청와대의 눈치만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외교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사 인사를) ‘이번 주말에 한다’는 얘기가 나온 게 벌써 4주째다. 언제 할지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외교부는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 3월 중순 이후 외교부 당국자들은 “4월23일로 잡힌 연례공관장 회의 전에 주재국으로부터 아그레망(승인)을 얻기 위해선 한 달 정도가 필요하다”며 “3월 말까지는 공관장 인사가 마무리돼야 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그레망이 거부된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아그레망 없는 대사들로 공관장 회의를 여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일 브리핑에서 주중·주일 대사 임명 시기에 대해 “이번주도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유를 질문받고 “적임자를 못 찾은 것 아닌가 싶고, 여러 가지 변수가 많다”고만 말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인사는 총선 이후에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대사 인선과 관련해선 한나라당 총선 공천에 탈락한 뒤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박희태 의원과 김덕룡 의원이 각각 주일 대사, 주중 대사로 내정됐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대통령이 친분 있는 인사를 대사로 임명하는 미국과 다르다”며 “대통령의 측근도 아니고 공천 탈락자를 대사로 임명한다면 반길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