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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칼럼- 이곳만 지나면 이곳만 지나면
코리안위클리  2003/02/20, 06:22:31   

새소리가
어둠을 밀어내는
새벽에
누군가 마음을 두드리는
혹은
내가 두드려야 하는
창 밖을 내다보다
새벽이슬같이 반짝이는
그대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나의 시 ‘새벽에’>



몇 년 전 영주권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영주권을 받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잠자리에 들기 전 아내가 한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아직까지 나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영주권을 받던 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 졌어요.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슬픔의 눈물이었어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당신 한 사람 때문에 나머지 세 식구가 희생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처음 얘기에는 나도 똑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깊은 공감을 했지만, 두 번째 얘기는 꼭 아주 큰 쇠망치로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의 이상을 위해서 나머지 식구들을 희생시킨다.’ 얼마나 영국생활이 외로웠으면 저런 말까지 할까하는 측은한 생각이 들면서도 갑자기 혼자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잠은 안오고 1층 내 방으로 내려왔습니다. 갑자기 오래 전에 즐겨 애송했던 시가 생각났습니다. 파블로 네루다라는 시인의 <한 여자의 육체…> 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다 그리고 밤은 그 막강한 군단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 내 활의 화살처럼, 내 투석기(投石器)의 돌처럼 *벼렸다”
가끔씩 어떤 시의 한 구절은 나를 놀라게 합니다. 그래서 그 시가 품고 있는 전체적인 느낌보다는 그 시의 한 구절만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시의 한 구절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가 나의 경우에는 그러했습니다. 서른 살 무렵이었나. 이 아름다운 시를 읽고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습니다. 그 외로움의 빈 공간에 나는 무진 애를 써서 무엇인가를 심어 놓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나이 사십대가 되어 똑 같은 시를 되새기며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가 아닌 ‘나는 터널처럼 외롭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다시 이 외로움의 공간에 무엇인가를 심어 놓아야겠지요.
요즘 내 서재에서의 독서나 글쓰기는 시간을 잊게 합니다. 이곳은 터널과 같습니다. 끝없이 이어져 있는 고독한 시간들. 그래서 요즘 나는 서성거리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냥 서성거리는 것. 그것도 내 방 안에서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서성거립니다. 글을 쓰다가도 그냥 일어나 서성거리고, 책을 읽다가도 그냥 일어나 서성거립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찬란한 세상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나에게서 아주 멀리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합니다. 나는 요즘 문을 열고 나가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문만 열면 그 여유로움. 초광속망으로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데…, 그것은 나에게 먼 미래, 오지 않을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작은 나의 방에서 자꾸만 나를 뒤돌아봅니다.
그러면 거기에 터널이 있습니다. 그래 그 터널을 멋지게 형상화한 글들이 떠오릅니다. 나도 과거의 어느 시점에는 맑은 눈동자로 티없이 맑은, 밝은,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 그것은 햇볕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없이 멀리 있는 터널의 까마득한 저 편에서 반짝이는 한 조각의 별빛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나는 몇 번인가를 서성거렸습니다. 그것은 이제 나의 취미생활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신상명세서의 취미란에 나는 주저 없이 ‘서성거리기’라고 쓸 것입니다. 친구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한번 서성거려보라고, 초고속으로 달려가는 너의 인생이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일 것이라고, 정말 애정이 있는 친구에게만 이야기할 것입니다. 미운 놈에게는 절대 이야기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삶의 행로에는 어쩌다 만나게 되는 터널이 있습니다. 이 공간은 삶의 축복입니다. 숲 속에 있는 옹달샘입니다. 더 늦기 전에 나는 터널 속으로 걸어갑니다. 이곳만 지나면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저 햇살처럼
끊임없이 나에게 명(命)을 내리시는 분
그 명을 좇아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존재이유입니다.
<나의 시 ‘존재이유’>

*벼리다: 날이 무디어진 쇠붙이 연장을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다.

- 김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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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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