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담은 어른이 먼저… 온 겨레가 민속놀이 즐겨
고려시대에 설날을 9대 명절 중 하나로 삼았다가 조선시대에는 이를 다시 한식, 단오, 추석 등과 함께 4대 명절이라 일컫었다고 한다. 이런‘설’은 한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조상들은 묵은 1년이 지나가고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 날로써 신년운수가 달려 있다고 믿었던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삼가고 조심한다’는 뜻의‘설’이라 부르며 다양한 놀이와 풍습으로 한 해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했다.
한때는 양력과 음력 설을 모두 쇠는 것이 국가적인 낭비라는 의견이 제기돼 이중과세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조상 대대로 명절로 삼아 지낸 날이 음력‘설’인 점을 인정하게 됐고, 700만 재외동포를 비롯한 7천500만 한민족이 그 전통과 풍속을 즐겨 기리고 있다.
설을 앞둔 한해의 마지막 무렵을 ‘세밑’이나‘세모’라 일컬었으며 일반적으로 지난해의 마지막 날인 그믐날에는‘궤세’라고 하는 명절 선물을 준비해 친지에게 전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희망찬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다.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면 골목마다 “복조리 사시오”라고 목청을 돋우는 장사치들에게 각 가정에서는 복조리를 산다. 일찍 살수록 좋으며 복을 불러야 한다는 뜻에서 복조리장수를 집으로 불러 복조리를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안에 걸어두면 국자 모양의 옴폭 패인 곳으로 그득그득 복이 든다고 믿어 실제로 동전이나 엿을 넣어두기도 했는데, 이는 다산을 기원하는 농경사회의 염원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민속학자들은 풀이한다.
이렇듯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그믐날 밤이 분주하다 보니 이 밤에 잠이 드는 일은 멀리하기도 했다. 중국 등 한자 문화권에서는 그믐날밤 잠이 들면‘눈썹이 희게 센다’고 믿는다. 이와 함께 설날 이른 아침에 짐승의 소리를 듣고 새해의 운수를 점치는‘청참’에 까치소리를 들으면 길하고, 까마귀소리는 대흉으로 여겼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미리 마련해둔 새 옷‘설빔’을 입고 가족 및 친척들이 모여들어 정초의 차례를 지낸다. 명절에 올리는 제사인‘차례’는 기제사를 지내는 조상들에 올리는 약식제사로서 대청마루나 큰 방에서 지내며, 제상에는 병풍을 두른다.
차례가 끝난 후 가족과 손님이 모여 먹는 설날 첫 식사를 ‘세찬’이라 하며, 어른들이 반주로 마시는 술을 ‘세주’라고 했다. 손님 대접에도 쓰고 제사에도 쓰는 떡국의 재료 가래떡은 흰색으로 ‘엄숙’과 ‘청결’을, 기다랗게 이어지는 모양으로 ‘장수’를 상징했다. 차려진 떡국과 탕, 과일, 술, 포, 식혜 등은 차례가 끝난 후 나누어 먹는데 조상이 드신 음식을 먹음으로써 덕을 물려받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차례가 끝나면 조상과 집안 어른께 성묘와, 세배를 한 후, 세장을 차려 입고 이웃 및 친인척을 찾아 새해인사를 하고 덕담을 들었다. 이때 집밖을 나서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과세 안녕하셨습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등 덕담을 주고받는데, 웃어른이 먼저 덕담을 하기 전에 아랫사람이 먼저 덕담을 건네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니 유의해야 한다.
가족과 친지에 예의를 차리는 행사가 끝나면 각종 민속놀이를 즐기며 한민족의 신명을 풀었다. 설 민속놀이의 원형은 청소년 집단에 의해서 관행되던 사람의 모습이나 동물로 가장한 대상을 흉내 내며 내쫓는 시늉을 한 것으로‘탈놀이’가 변형된 것으로 생각된다. 선조들은 이렇듯 액을 몰아내는 행위를 놀이로 승화해 일가친척 및 같은 부락의 사람들, 나아가서는 방방곡곡의 백성들이 함께 행했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이러한 놀이는 가까운 이들이 함께 즐기는 의미를 강하게 띄게 되면서 널뛰기, 연날리기, 윷놀이, 팽이치기, 투전 등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놀이판에는 대표적 절식인 만두, 저냐, 편육, 약식, 인절미, 단자, 식혜, 수정과, 나박김치, 장김치, 깍두기 등이 세주와 함께 차려졌다.
이러한 놀이는 빈부, 신분, 남녀노소 등 모든 사회적 격차를 뛰어 넘어 한민족이 어우러지는 장으로 마련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는 강력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사회에서도 널리 행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렇듯 사회적 관습과 계급을 떠나 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명절로 자리 잡은 설날은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멀리 흩어진 가족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핵가족화의 심화와 편의와 이기를 추구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점차 한민족 고유의 전통이 퇴색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재외동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