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19일 주장한 삼성의 떡값 전달 방법과 시기 등은 지난달 관련 의혹을 처음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떡값 전달수법 증언 비슷=‘삼성 이건희 일가 불법규명 국민운동’에 따르면 이 전 비서관은 2003년말 청와대 조직개편으로 종전 민정2비서관에서 법무비서관으로 보직이 바뀐 직후 당시 삼성전자 법무팀 상무로 재직중인 이경훈 변호사를 만나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이 전 비서관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당시 이 변호사로부터 “명절에 회사에서 내 명의로 선물을 보내도 괜찮겠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한과 등 의례적인 선물이라고 판단, 이를 수락했다. 설 연휴 직전인 2004년 1월16일쯤 자신이 일하던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선물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은 이 전 비서관은 1월26일 집으로 배달된 이 변호사의 선물을 뜯어보고 책처럼 포장된 이 선물이 실은 돈다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국민운동이 공개한 증거사진을 보면 선물이 담긴 종이백에는 이 변호사의 삼성전자 명함이 꽂혀 있고 책 1권 크기의 선물포장지에는 ‘이용철(5)’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으며, 안에서는 책이 아니라 100만원 단위로 묶인 현금 다발 5개가 나왔다.
이 전 비서관은 “당시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차떼기’가 밝혀져 온 나라가 분노하던 와중에 당사자 중 하나인 삼성이 반부패제도개혁을 담당하는 청와대비서관에게 버젓이 뇌물을 주려는 행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며 “집사람에게 ‘삼성이 간이 부은 모양’이라고 하고 이 사실을 폭로할까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전 비서관은 사건의 일각인 ‘뇌물 꼬리’를 밝혀봤자 이 변호사라는 꼬리만 자르는 것으로 사건이 축소될 것을 우려해 증거사진을 찍어둔 뒤 돈을 이 변호사에게 돌려줬다고 국민운동은 전했다.
당시 현금 선물 전달은 삼성 에버랜드 변칙증여와 관련해 그룹 고위 관계자들이 기소된 지 불과 한 달뒤에 이뤄진 것이어서 일종의 청탁성 로비가 아니냐는 의혹을 더욱 짙게 한다. 국민운동은 “이번 뇌물 전달 시기와 방법, 전달 주체 등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내용과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 구조본 법무팀과 관제팀의 주도 아래 CD나 책으로 위장된 현금 다발로 전방위 뇌물을 제공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청와대도 특검 대상” vs “억측에 불과”=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청와대가 특검 도입에 소극적이었던 것을 지적하며 즉각적인 특검 도입을 요구했다. 삼성이 이 전 비서관에게 돈을 전달했다면 청와대 인사 중 삼성의 돈을 받은 또 다른 인사가 있는지, 청와대가 이를 알고도 은폐하기 위해 특검 도입에 반대한 것은 아닌지 밝혀야 한다는 것.
청와대는 돈뭉치 사진까지 제시되자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 관계자는 “이 전 비서관이 당시 상부나 주변에 어떠한 보고나 신고도 하지 않아 오늘 알게 됐다”면서 “이 전 비서관이 받았으니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사태의 확산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