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할수록 적자’ 문닫는 병·의원 늘어…
지원자 감소, 중도 포기 등 악순환 연속
대한민국에 외과가 사라지고 있다. 젊은 의사들은 힘들고 어렵다며 외과 지원을 기피하고, 기존의 외과의들은 의료수가(수술비)가 열악한 데다 의료사고를 우려, 메스를 놓고 있다. 오는 7일은 외과학회 창립 60주년. 세계 최고 수준의 위암 수술과 장기 이식 실력 등을 자랑하는 한국 의학의 중추인 외과가 흔들리고 있다.
강원 인제군에는 병원 2곳과 의원 8곳이 있지만 ‘맹장염(충수돌기염)’ 수술 등 간단한 외과 수술을 하는 병원이나 의원은 한 곳도 없다.
“맹장수술을 하려면 입원실도 갖추고 수술전문 간호사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갖춰 하려고 하면 오히려 적자예요. 더욱이 주민들은 큰 병원에만 가려고 하고, 의료사고 한번 나면 거덜날 정도가 되니, 누가 힘들게 수술을 하려고 하겠어요.” 외과 전문의인 인제군 한림의원 원장 윤효섭씨의 말이다.
◆외과 기피하는 젊은 의사들
800병상 규모의 대전시 A대학병원. 외과 입원 환자가 80여 명이고, 한달 외과 수술이 180~200건에 이르지만 외과 전공의(레지던트)는 3명뿐이다.
C모 교수는 “12월에 있을 전공의 모집을 앞두고 외과를 하겠다고 찾아온 젊은 의사가 충청도와 대전시 모두 합쳐서 4명뿐”이라며 “비전이 없으니 지원자가 없고, 남아 있는 전공의는 일이 많아 중도에 외과 수련을 그만두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신입 외과 전공의 충원율은 정원의 71.4%이다(대한외과학회 조사). 즉 필요한 인원 10명 중 7명만 채워져 3명이 부족한 것이다. 그나마 올해 외과 수련을 포기한 신입 전공의가 20명이며, 지난해에는 34명의 젊은 외과의사가 병원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외과를 포기했다.
이처럼 각 병원에 외과 전공의가 모자라자 서울아산병원·분당서울대병원·국립암센터 등 주요 대학병원들이 간호사를 전문적으로 훈련시켜 외과수술 보조원으로 쓰고 있다. 대한외과학회 박용현(전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 회장은 “동네 의원 의사들도 외과가 없는 병원에서 개업할 수 있도록 개방병원제도를 도입하고, 어려운 수술에 수술비를 더 지원하는 정부의 획기적인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외과 수술 접는 병·의원들
강원도 화천군에는 8개 의원이 있고 2명의 외과 전문의가 있지만, 수술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전라북도 무주군도 외과 수술을 하는 병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무주군의 장진성 성모외과의원의 경우 ‘외과’라는 명칭과 달리 외과 수술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개업한 지 6년이 됐는데, 수술은 거의 손떼고 일반 의사들처럼 감기환자 등을 본다”고 말했다.
충남 서천군 서천읍의 유일한 병원인 서해병원도 수술실을 폐쇄한 지 4년이 됐다. 외과 전문의가 없어서 응급실 문도 닫았다. 이 원장의 말처럼 수술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게 돼 있는 보험수가(수술비) 체계에다 환자들이 큰 병원만 찾는 경향이 짙어 지방병원들의 외과 수술실들이 폐쇄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외과학회 분석에 따르면, 개업한 병·의원 외과 전문의 중 수술을 하는 의사는 20명 중 1명 정도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