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밤 10시께 서울 중계동 고교입시 학원인 ㅎ학원.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둔 20여개 강의실마다 외국어고·과학고 등 특수목적고 입시 대비 강의를 받는 중학생들로 빼곡했다. 50분 강의를 끝내는 종이 울리자 쏟아져나온 아이들로 복도와 화장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정수기 물을 먹으려는 줄도 2m를 넘었다.
특목고 입시 열풍에 수도권 학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초 ‘학교 공부만으로도 외국어고 간다’는 제목으로 외고 입학전형 개선 방안을 내놨지만, 교육 현장은 전혀 딴판이다. 1학기 기말고사 뒤로는 더욱 북적댄다. 내신은 3학년 1학기까지만 반영되기 때문이다.
서울 목동 ㅈ학원은 중등반 1천여명 가운데 절반이, 경기 안양의 한 학원도 3천여명 가운데 1천여명이 특목고를 대비하는 중학생들이다. ㅍ, ㅂ, ㅇ학원 등은 아예 ‘특목고 수학 전문’ ‘구술·면접 전문’ 같은 간판을 내걸고 있다. 서울 중계동 ㅌ학원은 중등관으로 12층 건물을 쓰는데, 그것도 모자라 얼마 전 다른 건물 한 층을 더 빌려 쓴다. 경기도 평촌의 한 특목고 학원 강사 이아무개(37)씨는 “잘나간다는 학원들은 수강생의 80%가 특목고 준비생”이라고 말했다.
이런 학원들의 강의는 학교 수업보다 훨씬 강도가 세다. 학교 수업을 마친 오후 5시쯤 시작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서울 ㅅ학원은 오후 6시1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10분까지 7교시 강의를 평일 내내 한다. 일요일에도 보강·특강을 한다. 강의가 끝나도 학생들은 학원을 떠나지 않는다. 학원에 남아 학원 숙제나 자율학습을 한다. 집엔 새벽 2∼3시에야 돌아간다.
경제력 있는 학부모들은 ‘고액 과외’도 한다. 1∼2명 또는 4∼5명이 모둠을 지어 받는 특목고 과외비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지난해 과외를 했다는 서아무개(36)씨는 “한 명에 100만원을 기본으로 받았다”고 했다.
특목고 학원들이 성업을 이루는 것은 외고들이 ‘외국어 영재’보단 ‘성적 우수자’를 가리는 데 초점을 두며 중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나 고교 1∼2학년 수준의 어려운 입시 문제를 내기 때문이다.
경기 지역 대다수 외고들은 여전히 영어(독해·듣기)·국어에 수학까지 학업적성검사라는 이름으로 지필시험을 치른다. 내신 실질반영비율은 고작 10% 안팎이다. 학원들은 고교 1∼2학년 수준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서울 지역 외고들은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30%로 올렸지만, 학생들은 내신보다는 영어 듣기 등 영어 실력 말고도 구술·면접 시험에서 당락이 갈릴 것이라고 말한다. 경기 일산에서 학원 강의를 하는 박아무개(40)씨는 “외고들은 중학교 수준의 문제들을 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고 1∼2학년 수준의 문제가 포함되므로 교과서만 익히는 정도로는 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ㄱ외고 1학년 정아무개(16)양은 “구술·면접에 8∼11문제가 나오는데, 문제를 보는 시간 30분을 주고 15분 동안 답변한다”며 “나도 학원에 다녔는데, 학원을 다니지 않고 특목고 가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교육 당국이 내놓은 외고 전형 개선 방안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