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의 한인들은 어느 민족도 따라오지 못하는 부지런함을 무기로 미국 사회 곳곳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그러나 한인 사회의 그늘에는 무작정 미국 땅에 발부터 들여놓은 불법체류자들의 고단한 삶도 숨겨져 있다. 그들은 저임금과 차별에 시달리면서도 언제 추방될지 몰라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며 생활하고 있다.
A씨 부부가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온 것은 1999년이다. 그해 여름 부부는 고교 3년·2년생 딸과 일곱살.여섯살짜리 늦둥이 아들들을 데리고 캐나다 국경을 몰래 넘었다. 밀입국이었다.
97년 외환위기 때 운영하던 제재소가 부도가 나며 집도 날리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다가 “미국에 가서 새로 시작하자”며 마지막 선택으로 삼은 것이 미국행이었다.
두 딸은 비자 발급을 신청했다가 미국 대사관에서 거절당한 뒤 밀입국을 택한 부모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들은 상황을 몰랐다.
“국경의 포도밭을 넘을 때 아들놈들에게는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1등을 하려면 들키지 말아야 되니 숨소리도 내지 말고 가만히 누워있으라고 했죠.” A씨의 얘기다.
이렇게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알선조직을 만난 A씨 가족은 국경을 넘은 뒤 곧바로 한인들이 많다는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 한국에서 전세금을 빼 마련한 2만5천달러는 모두 알선조직의 손에 들어갔다.
LA에서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그곳의 한 한인단체에서 몰래 마련해준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서 이들은 한동안 신문지를 깔고 잠을 청해야 했다. 영어를 모르는 두 아들은 6개월 동안 아파트 바깥으로 내보내지 못했다. 잃어버릴까 걱정해서였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의 미래는 여전히 밝지 않다. 남편은 시장에서, 부인은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해 한달 수입이 팁까지 합쳐 2천달러(2백40여만원) 정도다. 가족이 겨우 먹고 살 돈은 되지만 이들의 신분은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불법체류자’이다.
합법 신분이 아닌 이들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남의 이름으로 임대해야 했다. 운전면허증도 발급받을 수 없어 자동차가 발이나 마찬가지인 미국에서 차 없이 생활하고 있다.
미국에서 불법체류자란 관광·학생비자로 입국했다가 체류기간을 넘겨 머물고 있거나 A씨 부부처럼 아예 공항 검색대를 거치지 않고 밀입국한 이들을 말한다.
지난해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내 한인 불법체류자는 18만2천여명. 멕시코·엘살바도르·러시아 출신 등에 이어 여덟째로 많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는 미국내 전체 한인이 1백7만6천여명이었다.
공개적으로 신분을 밝혀야 하는 인구조사에 응한 한인들이 모두 합법체류자라고 가정하면 미국의 한인사회는 합법체류자 1백명당 불법체류자 16명꼴인 셈이다.
불법체류자들의 삶은 고달프다. 정식 취업이 안되는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저임금·단순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한인이 운영하는 LA의 무역업체에서 1년째 일하는 B씨(33·여)의 월급은 동료들의 절반에 불과한 1천50달러(1백20여만원)다.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
그나마 이 월급은 이곳에 오기 전 여행사 등에서 익힌 컴퓨터·타이핑 능력과,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경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93년 유학비자로 미국에 들어와 눌러앉았지만 지금의 월급으로는 미래를 위한 저축은 커녕 생활도 안된다.
특히 A씨 가족처럼 밀입국한 이들은 미국에 들어온 기록 자체가 없기 때문에 미국 생활의 기본인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를 발급받지 못해 집을 살 수도, 은행을 이용할 수도 없다.
사회보장번호는 사회보장법에 따라 미국에서 취업이나 세금납부 등을 위해 필요한 일종의 신분 증명에 해당된다. 사회보장번호가 없으면 은행 등에서 ‘신용 미확인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통장도 만들 수 없고, 대출도 해주지 않는다.
불법체류자들은 자녀들을 대학에 보낼 꿈조차 꾸기 힘들다.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으면 외국인으로 간주돼 일반 미국인들보다 10배 이상의 학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LA의 한 학원 관계자는 “캘리포니아주 대학의 경우 주민이면 학비가 1학점에 최저 12달러 정도이지만 외국인은 최고 1백60달러나 받기 때문에 대부분 저소득층인 불법체류자들은 자녀를 대학에 보낼 엄두를 못낸다”고 설명했다.
고교 2년 때 온 가족이 미국으로 밀입국했던 C씨(24)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아버지와 함께 LA의 코리아타운에서 5년째 건물청소 일을 하고 있다. 대학 진학은 등록금 때문에 포기했다.
졸업 후 잠시 한인 상대 여행사에 들어갔지만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지 못해 여행객 안내 업무를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고민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동생도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법체류자들을 더욱 옥죄는 것은 자칫하면 추방당한다는 불안감이다. 지난해 10월 워싱턴 인근에서 연쇄저격 사건이 발생해 11명이 사망했을 때 이곳의 한인 불법체류자들은 일제히 잠적했다.
14차례의 저격사건이 이어지는 동안 단서조차 못잡고 있다는 여론의 비판이 줄을 잇자 다급해진 경찰이 대대적인 검문에 나섰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김모씨는 “주로 잔디깎기·마루깔기·배관공사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불법체류자들은 히스패닉 불법체류자가 검문에서 체포된 사실이 알려지자 모두 숨어버렸다”고 말했다.
교민사회에서는 각종 불이익과 차별대우를 받아가며 그날그날 연명하는 불법체류자들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워싱턴의 전종준 변호사는 “한인사회가 집단적으로 나서서 미국 정치권에 불법체류자 구제책을 마련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