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일각에서 ‘내각제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한화갑 대표(사진)가 13일 “내각제를 논의할 단계가 됐다”고 언급해 이 문제가 정치권에서 공론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대표는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 “내각책임제 문제는 거론할 때가 됐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며 이어 ‘양당 합의만 되면 둘다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란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뒤 “둘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 안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대표의 이같은 언급은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가 지난 3일 내각제 개헌 발언을 하고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내각제 지지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정치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양당 협상 과정을 통해 중대선거구제와 내각제 개헌을 한묶음으로 처리하겠다는 전략을 내비친 것으로도 풀이될 수 있어 주목된다.
한편 내각제 개헌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당 개혁 문제에 몰두해 있는데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개헌 논의는 2006년에 하겠다는 국정 청사진을 밝힌 직후 내각제 개헌 문제가 ‘돌출 변수’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내각제 공론화를 처음 시도한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이규택 원내총무가 3일 “2월이나 4월 임시국회에서 내각제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조속한 논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
이후 한동안 잠잠하더니 13일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내각제 개헌을)논의할 때가 됐다”고 화답하고, 민주당 일부 의원의 동조와 자민련의 적극 환영이 이어지면서 급속히 번지고 있다. 14일에는 한나라당 당·정치개혁특위의 이강두 1분과위원장이 “정강 정책에 내각제를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며 당론화 추진 의사까지 밝혀 가속도가 붙었다.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한결같이 권력 분산과 지역주의 극복이지만 속내는 다를 것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내각제 띄우기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 상당수가 정당개혁 열풍에서 한발짝 비켜 있다는 점에서 ‘소나기 피하기’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이 그것이다.
민주당 김성호 의원은 “개혁 과정에서 청산 대상으로 지목되는 과거 정치인들이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기투합한 것 같다”고 혹평했다.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한화갑 대표 등 구주류측이 정국 물살을 개헌 쪽으로 돌리기 위한 전략적 차원이라는 해석이다.
한나라당의 경우도 또다시 ‘상실의 5년’을 보내야 하는 박탈감에다 ‘노무현 정권’에 집중될 권력을 견제하려는 정파적 이해가 결합돼 내각제 논의가 일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내 151석의 한나라당이 적극 나서고 자민련(12석)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가세할 경우 개헌 가능 의석(재적 273석의 3분의 2인 182석)에 육박할 것이란 점에서 개헌 논의의 폭발성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