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 전 대통령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최 전 대통령은 22일 오전 6시께 서울 서교동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진 뒤 오전 7시37분께 마지막 숨을 거뒀다. 88살. 몇년 전부터 심장질환 등 노환으로 치료를 받아왔던 최 전 대통령은 급성 심부전증으로 숨졌다. 유족은 장남 최윤홍씨 등 2남1녀가 있다.
최 전 대통령의 조용한 서거와 함께, 많은 이들이 그의 묵직한 음성을 통해 듣고 싶어했던, 피끓었던 1979~80년 격동기의 몇가지 진실도 끝내 흙 아래 묻히게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된 10·26사건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까지 권한대행을 포함해 10개월 정도 국가 원수의 자리를 지켰던 최 전 대통령은 결정적인 역사적 순간에 최고 결정권자로서 관여했고, 검찰 수사에서도 끝내 밝혀지지 않은 당시 역사의 실제 장면들을 가슴 속에 저장해두고 있었다.
국민들이 그의 육성 증언에 특히 목말랐던 대목은 △그가 10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엿새 만에 일어난 12·12 군사쿠데타에서 신군부의 정승화 당시 육군 참모총장 연행을 사후 재가한 과정 △5·18 당시 광주 민중에 대한 발포가 대통령의 최종 결정인지 신군부의 독자적 행동인지 △그가 대통령직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넘기는 과정 등이다. 신군부로부터 강한 압력이나 협박이 있었을 것이란 추정이 힘을 얻고 있지만, 당사자인 최 전 대통령의 육성만큼 무게있는 증거는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역사 교과서의 페이지를 장식할 결정적인 사료가 되는 셈이다.
물론 생전에도 최 전 대통령은 단호히 말을 아꼈다. 검찰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한 뒤 1995년 12월12일 최 전 대통령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전직 대통령은 ‘항룡’(천상의 용)의 위치에 있다. 재직 때의 일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입을 다물었다. 1996년 11월4일 구인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법정에 나섰을 때도 나라 안팎의 취재진과 방청객들이 발디딜 틈 없이 그의 입을 바라봤지만 ‘항룡’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이후에도 철저한 칩거의 나날이었다.
최 전 대통령도 회고록을 집필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으나, 최흥순(70) 행정자치부 전직 대통령 비서관은 “워낙 꼼꼼하신 분이니 12·12와 관련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으셨겠느냐. 하지만 비서관들에게 구술한 적은 없다. 있다면 자필로 남기셨을텐데, 아직 서랍을 뒤져보거나 하지 않아서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는 “최 전 대통령은 역사적 격동기의 희생양일 수 있으나, 재임 기간에 있었던 일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진실은 묻혔고, 국민들은 교훈을 얻을 수 없게 됐다”며 “그가 나라의 지도자로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반성이나 해명 혹은 항변조차 하지 않고 떠난 것은 대단히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고인이 된 최규하 전 대통령의 비망록 존재 여부에 세인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비망록 형식을 띤 기록이 남아있을 가능성에 무게가 점차 실리고 있다.
최 전 대통령의 장남 윤홍씨는 23일 지인들에게 “아들로서 부모가 일기를 쓰는지 물어볼 만한 성질이 아니라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버지께서 일기를 쓰셨을 가능성은 있다”며 원론적으로 비망록 존재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최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자리에서 “최 전 대통령이 (재직 당시 일 등을) 굉장히 섬세하고 풍부하게 모두 기록했을 것”이라며 “비망록이든 회고록이든 (그 기록이) 발표되면 여러분이 궁금하게 여기는 점이 밝혀지리라 생각한다”고 비망록 존재 가능성을 언급해 시선을 끌었다.
1990년대 중반 12.12 및 5.18 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한나라당 장윤석(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장) 의원도 이날 “확인할 수는 없지만 (최 전 대통령이) 회고록이나 비망록을 쓰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해 이른바 ‘최규하 비망록’ 존재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와 관련, 최 전 대통령을 끝까지 보좌한 최흥순 비서실장은 이날 일부 기자들에게 “최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쓰신다는 말씀을 우리한테 한 적은 없다”며 “그러나 돌아가신 뒤 최 전 대통령의 서재를 열어본 사람이 없으니까 개인적 기록이 담긴 쪽지 등이 없다고도 있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 비서실장은 “비망록 등이 발견되면 가족회의를 열어서 (공개여부를)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최 비서실장의 언급에 비춰볼 때 최 전 대통령의 비망록이 일기 등 형식으로 존재할 경우 공개여부는 가족의 뜻에 따라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 전 대통령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아 가려져 있던 12.12 사태 당시 신군부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에 대한 사전재가 여부나 5.18 당시 광주에서 발포명령 허가 등과 관련한 진실이 햇빛을 보게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