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백년간 피와 땀으로 얼룩진 드라마를 엮어낸 미주지역 동포들에게 교육은 한인들이 낯선 미국땅에서 뿌리내리는 원동력이자 희망의 불씨였다. 지금도 한인의 교육열은 미주 내 타 인종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유별나다.
자녀교육에 쏟는 정성에 관한 한 한국 본토나 미주 한인사회는 조금도 다를 게 없다. 1백년 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첫발을 들여 놓은 한인들은 정착 1년9개월 만에 학교를 세웠다. 1904년 호놀룰루에 ‘한인 남자기숙학교’가 설립될 때 하루 수입이 70센트에 불과하던 한인들의 모금액은 거금 2천달러에 달했다. 대를 이은 교육열로 한인 거주지마다 입시학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미국 LA의 코리아타운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 달리면 부유한 유대인 주거지역 한복판에 자리잡은 S초등학교가 나온다.
이 학교는 지난해 캘리포니아 교육청이 실시한 학생학력평가(API)에서 주내 4백50여 초등학교 중 상위 10위 안에 들었을 정도로 잘 가르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지능검사로 영재반(gifted class)도 만들어 별도로 수업을 한다.
자녀 교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한인들이 이 학교를 놓칠 리가 없다. 이 학교의 학생 8백여명 중 한인 학생들이 4백여명이나 된다. 정작 유대인 학생은 20%에 불과하다.
S초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킬 수 있는 교육구(학군)가 코리아타운 일부와 겹쳐 있기도 하지만 일부 한인 학부모들이 슬쩍 주소지를 옮겨 위장 전입을 시도하는 탓도 있다.
“지난해 초 성이 다른 한인 학생들 네댓명이 같은 아파트를 주소지로 적어 냈다. 교육구 직원이 가정방문을 해보니 실제 거주자는 두 가구에 불과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규정 위반으로 내보내야 했다.”
이 학교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가을 이 학교에서는 수업 중 한 한인 학생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당황한 교사가 학부모에 연락하려 했지만 학생은 집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잡아뗐다.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앞자리 지역번호를 통해 거주지가 드러나므로 부모가 “학교에서는 절대 전화번호를 얘기하지 마라”고 아이에게 일러둔 탓이다.
학교 관계자는 “한인 학생들의 비상연락망 카드에는 휴대전화 번호만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취학규정이니 장거리 통학이니 이것저것 구애받기 싫어 아예 명문고 인근으로 이사해 버리는 한인들 때문에 미국 대도시의 땅값 지도가 바뀌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내에 이른바 ‘8학군’ 땅값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LA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 일대에서 명문고로 알려진 휘트니·글렌데일 고교 인근의 집값은 주변 지역보다 평균 20만달러 가량 비싸다.
케네스 엄 남가주한인부동산협회 회장은 “7~8년 전부터 한인들이 명문고 교육구의 주택가로 몰리면서 학군에 따른 땅값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고 말했다.
한국 이민사 전문가인 세인트노버트 대학의 웨인 패터슨 교수(동양사)는 “다른 미국인들과 달리 한인들이 학생학력평가(API)가 높은 학교들을 쫓아다니면서 집세를 올려 놓은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 학원이라는 ‘신종’교육사업을 만들어 놓은 것도 한인들이다. 지난 연말 LA 코리아타운의 D학원. 오후 8시면 거리에 인적이 끊기는데도 D학원에서는 월 수업료 3백달러(36만원)짜리 대입시험(SAT) 강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LA에만 이런 크고작은 한인 학원 1백50개가 있으며, 뉴욕과 뉴저지 일원에도 1백여곳이 성업 중이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