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10월6일) 연휴는 최대 9일(30일~10월8일)이다. 짧은 기간 북적북적 고향 오가는 일에 익숙했던 예년과는 다르다. 연휴가 길어진 만큼 한가위 맞이도 각양각색이다. 주부는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서고, 미혼 남녀는 짝짓기, 직장인은 해외여행이나 성형수술 등을 계획중이다. 그러나 생업에 찌들고 미래가 암울해 한가위가 여전히 두려운 ‘명절 기피형’도 있다.
한가위는 기회다!
아르바이트, 짝짓기, 성형수술, 해외여행
주부 손모(47)씨는 ‘명절 도우미’로 나설 참이다. 다년간의 식당 주방보조 경력으로 무장한 그는 지난달 29일부터 닷새 동안 남의 집 차례 음식을 대신 요리한다. 하루 8시간 근무에 일당 10만원이다. 그는 “연휴가 길어지면서 차례 음식을 일찌감치 준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짭짤한 수입을 기대했다.
미혼 남녀는 짝짓기에 바쁘다. 명절을 앞두고 홀로 고향 갈 생각에 ‘맞선 열풍’이 불었던 예년과는 조금 다른 이유다. 회사원 김모(33)씨는 “올 설에도 맞선을 봤지만 연휴가 짧아 벼락치기였다”며 “이번엔 진득하게 상대를 만날 시간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에 따르면 한가위 연휴 기간 미팅건수가 하루 평균 110건으로 평소보다 50% 늘었다.
병원도 한가위 특수를 누리고 있다. 유명 성형외과나 피부과, 라식 수술 전문 병원은 수술 예약이 꽉 찼다. 라식 수술을 예약한 대학원생 안모(27)씨는 “방학 때도 논문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마음 편히 수술을 받고 고향은 다음에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모습은 낯선 풍경도 아니다. 동남아 등은 몇 달 전부터 항공권이 매진됐다.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는 회사원 임모(30)씨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장거리 여행을 준비했다”말했다.
한가위는 공포다!
대입, 고시·취업 준비, 밀린 업무 처리
긴 연휴가 즐겁지 않은 사람도 많다. 수능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 고시나 취업 준비생, 업무가 산더미처럼 밀린 직장인에겐 연휴기간에도 피 말리는 스트레스가 이어진다. 남들은 즐겁다는 기나긴 연휴가 오히려 싫다. 고향 갈 엄두도 아예 내지 못하는 이들은 자기 신세가 더 없이 처량할 뿐이다.
서울 신림동에서 9년째 사법시험을 준비중인 한모(34)씨는 연휴동안 고시학원에서 열리는 특강이 많아져 더 바쁘다고 했다. 그는 “고향(대구)에 못 내려간 지 벌써 오래됐다”라며 “연휴도 긴데 잠깐 들렀다 가라는 부모님께 사정을 말씀 드리지만 마냥 죄스러울 뿐”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고3인 정모(18)군은 “들뜬 분위기 때문에 교과서의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지만 영화 한편 보려고 해도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의 속은 타 들어간다. 기업들이 연휴 기간 내내 채용공고 자체를 하지 않거나 미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보좌관 신모(33)씨는 12일 시작하는 국정감사 때문에 연휴 내내 밤샘작업을 해야 한다. 명절이 와도 일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한가위는 그림의 떡이다.
최장 9일까지 이어지는 추석 연휴를 맞아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고액 과외가 성행하고 있다.
속칭 ‘명절 과외’ 는 연휴기간 3~5회 진행되면서 과목별 수업료가 500만원을 호가하지만 서로 하려고 달려들어 자리가 없어 못할 정도라는 게 주변의 귀띔이다.
학부모 박 모씨(44·강남구 대치동)는 지인을 통해 언어영역 가운데 고전을 학습하는 과외팀에 고교 1학년인 아들을 참여시켰다.
박씨는 “엄마들이 평이 좋은 강사와 접촉해서 팀을 구성한다”며 “연휴라고 놀릴 수도 없고, 수백 명 듣는 대형강의보다 소수로 모여 듣는 것이 효율적일 것 같아 과외를 받기로 했다” 고 말했다.
나흘 동안 세 시간씩 진행되는 과외 비용은 500만원.
박씨는 “팀 인원으로 나눠서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개인과외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팀과외 규모가 보통 10명 이내인 것을 감안하면 개인별로 적게는 50만원, 많게는 100만원을 지불하는 셈이다.
연휴 사흘 동안 같은 학교 5명과 함께 과학 탐구 가운데 화학 과외를 받는 한 학생의 어머니 정 모씨(45·강남구 삼성동)는 “솔직히 학원 특강도 비싼 데는 3회에 20만원이 넘는다”며 “부담은 되지만 취약과목을 보충할 수 있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명절 동안만 하는 과외는 늘상 있었다”며 “주로 강남쪽 외고 학생들 부모들이 몇 명을 모아 유명 강사를 초빙해서 하는데 가격은 기본이 400만~500만원”이라고 설명했다.
대치동에서 10년 가까이 강의를 해 온 강사 김 모씨도 “이번 명절은 유난히 길어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강사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일류 강사는 굳이 학원을 벗어나 과외를 하지 않아도 수익면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며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이런 강사들은 대부분 한 등급 낮은 강사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긴 연휴를 이용해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들이 몰리면서 학원가에는 유명 강사의 수강권이 웃돈까지 얹어져 팔리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고2인 한 학생은 “노량진 M학원의 추석특강에서 원하는 선생님 강의가 다 차서 5만원을 더 주겠으니 수강권을 팔라고 인터넷 게시판 등에 광고를 냈다”며 “(강의를)놓친 친구들 중에는 원래 수강료의 두 배를 준다는 애도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의 유명학원 한 군데선 15만원짜리 특강을 마련했는데 열자마자 600명이 몰려들었다.
또 다른 입시학원 이 모 원장도 “한 달 전부터 강좌당 200~300명씩인 추석특강 등록이 시작됐는데 2주 전에 벌써 다 찼다”며 “연휴에는 과목별·파트별로 집중학습을 하기가 좋은데, 특히 이번엔 기간이 긴만큼 공부에 대한 아이들 부담도 커진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