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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 칼럼>가을은 떠나는 것들과 함께
코리안위클리  2006/09/21, 04:00:11   

참 좋은 날씨이지요.
그래 좋은 날씨야
아내와 내가 무심히
이 아름다운 날을 기뻐하면서도
나는 왜
햇빛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말하기 위해
제 몸을 살라 빛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일까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성자와 이야기하듯이
눈과 눈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를 하면서
나뭇잎이 기쁨으로
온몸을 적시고 있는 풍경을
나도 황홀히 바라본다

햇빛이 강물처럼 흘러
공원전체를 햇빛의 생각아래
가두는 풍경을
그저 바라만 본다.

<나의 시 ‘황홀한 풍경’>


가을은 ‘간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는 아주 재미있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순전히 감각적인 유추작용이지만 사계절의 명칭은 모두에게 나름대로의 연상을 일으킵니다.
봄이라고 하면 ‘본다’라는 말과 관련이 있는 듯이 여겨집니다. 정말 봄이 되면 무엇보다 시각에 들어오는 색깔들이 완연히 달라집니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가 하면 갖가지 꽃들이 제마다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피어납니다.
중세기 연금술사들이 축복의 녹색이라고 명명한 그 초록빛이 온 대지를 뒤덮기 시작합니다. 볼 것이 없었던 겨울과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입니다. 볼 것이 많다 하여 봄이라는 명칭이 생겨나지 않았나 하는 소박한 생각마저 듭니다.
그리고 여름은 아무래도 ‘열’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한문어인 ‘열’에서 여름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겨울은 ‘겨우’라는 부사를 연상시킵니다. 사실 겨울 동안이라는 말을 ‘겨우내’로 줄여 표현하기도 합니다. 겨우 견뎌 나가는 계절이 겨울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가을은 ‘간다’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름다웠던 봄과 싱싱했던 여름이 가는 계절, 반갑게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계절, 사랑하는 사람이 이별의 말을 남기고 떠나는 계절, 낙엽들이 저쪽으로 휘몰려 가는 계절, 인생의 중요한 시기가 가는 듯한 계절, 이렇게 모든 것이 떠나가는 계절이 가을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감상적인 사람들만이 가지는 기질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을 하늘을 우러러보면 그 높고 맑은 창공에 가녀린 구름들이 무언가에 쫓기듯 훠이훠이 떠밀려 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자주 있습니다.
구름도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산들이 울긋불긋 치장을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이별의 길을 떠나는 여인의 애처로운 화장에 불과할 뿐입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이제 죽음이 임박한 자가 마지막으로 얼굴 단장 몸단장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가을은 주위의 사물들이 떠나가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그리하여 다른 계절에 비해 숙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가을에 낯선 고장으로 떠나가 보는 여행은 계절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묘한 정취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모든 것이 가는 중에 나도 떠나갑니다. 이렇게 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떠나가지 않는 것이 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다른 것들이 멈추어 있는 중에 내가 떠나가면 나는 떠나가는 느낌을 강하게 받지 않을 수 없지만, 다른 것들도 떠나가고 있는 와중에서 나도 떠나가니 떠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또 말하면 나는 더욱 더 저 아래로 침잠하여 깊은 사색에 잠길 수도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지만 아무튼 가을 여행은 그 어느 계절의 여행보다 인생을 살찌게 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가을은 무엇보다 여행하기에 적합한 계절입니다. 봄 여행을 하면 대지의 현란함에 마음과 눈이 빼앗겨 본분을 잃고 어느 구석에서 바람이나 피우다가 돌아올지도 모르고, 여름여행을 하면 그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제대로 구경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또 더운 날씨로 인하여 어느 바닷가에서 해수욕이나 즐기다가 돌아올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겨울 여행은 추위로 인하여 어느 시골 방구석 아랫목에서 고구마나 까먹다가 돌아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가을에, 나는 떠나가는 이 모든 것을 붙잡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아니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미루지 말고 떠나야 합니다. 멀리 못 가면 가까운 공원이라도 한바퀴 돌아야 합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합니다.

폴란드의 한 유태인 마을에 신앙심이 강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고, 자식을 키웠으며, 가축들을 돌봤다. 그런데 그들 각자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죽기 전에 성지 순례를 한 번 다녀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여 앉으면 입버릇처럼 말했다.
“올해는 꼭 성지순례를 다녀와야지. 더 나이 먹기 전에 다녀와야겠어.”
그러면서 그들 각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으면 꼭 가야지. 소가 배가 잔뜩 불러 갖고 있으니 떠날 수가 있어야지.”
“난 신고 갈 구두가 없단 말야. 구두만 사면 더이상 미루지 않고 꼭 가겠어.”
또 다른 사람은 말했다.
“난 성지순례를 가면서 그냥 갈 수 없어. 멋진 노래를 부르면서 가야지. 그런데 내 기타가 줄이 끊어졌단 말야. 기타 줄만 갈면 떠나야지.”
그렇게 이유를 대면서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성지순례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독일군이 마을에 쳐들어왔다. 마을의 유태인들은 모두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야만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은 발가벗기운 채 가스실로 향하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집 소가 계속 새끼를 낳았는데도 난 성지 순례를 떠나지 않았어. 그때 충분히 갈 수 있었는 데 가지 않았어.”
“난 구두가 없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지. 고무신을 신고서도 갈 수 있었는데 말야.”
음악가는 말했다.
“난 기타 핑계를 댔지. 기타 줄이 없으면 성지 순례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했어. 그냥 노래만 부르면서 갈 수도 있었거든.”
그들은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그때 갔어야 하는 건데! 이미 때는 늦었어!”
그들의 말처럼 이미 때는 늦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가스실 문으로 끌려 들어갔다.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중에서


더 늦기 전에 망설이지 말고 떠나 봅시다. 떠나되 읽고 싶은 책을 들고 떠납시다.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들고 가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책이든 여행길을 의미 있게 해줄 것입니다. 가을 여행을 하면서 책을 읽으며 인생을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고… 아, 이 얼마나 멋지고 큰 축복입니까?


가을은
빈손을 툴툴 털며
홀연히 떠나가는
아름다움.
가을에, 나는 떠나가는 이 모든 것을 붙잡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아니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미루지 말고 떠나야 합니다.
멀리 못 가면 가까운 공원이라도 한바퀴 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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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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