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진(여·26)씨는 이달 초 뉴욕행 직항 비행기표를 어렵사리 구했다. 9월 29일 출발하려 했으나 표가 동났다고 해서 하루 휴가를 더 내고 28일 출국하기로 했다. 김씨는 10월 10일 귀국한다. “짧은 여름 휴가를 반납하고 긴 추석 연휴에 올인했죠. 친구들도 휴가를 내서라도 멀리 떠나자고 난리들이네요.”
여름휴가가 끝물을 맞고 있지만 한 달 뒤 ‘환상의 초대형 추석연휴’를 기다리는 여행객들의 마음은 벌써 공항으로 달려가고 있다. 올 추석 연휴는 10월 5일부터 8일까지 나흘이지만 개천절(3일)을 전후로 한 2, 4일 이틀만 휴가를 내면 토요일인 9월 30일부터 무려 9일을 논스톱으로 쉴 수 있다. 김씨처럼 휴가를 더 내면 10일 이상의 장기여행도 가능하다.
황금연휴를 겨냥한 여행객들로 인해 추석연휴 기간 중 항공권은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여행박사 심원보 팀장은 “추석연휴에 출발하는 이코노미석 항공권 예약은 아시아, 유럽, 미주 할 것 없이 6월부터 불이 붙어 빗자루로 쓸어버린 듯 좌석이 매진됐다”고 말했다. 심 팀장은 “10월 5일부터 출국 티켓은 일부 남아 있지만 귀국편이 별로 없어서 나가는 게 쉽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롯데관광의 경우 터키·그리스 여행상품은 4월 21일 팔리기 시작해 5월 24일 마감됐다. 추석연휴와 관련된 여행문의는 4~5월부터 시작됐고 대부분의 해외여행상품은 7월 중에 팔려나갔다. 인기 코스는 2~3개월 전에 매진됐다. 예약 리스트에 올려놓은 대기자들도 적지 않다.
예년과 달리 추석연휴가 길어지자 해외여행 패턴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종전에는 3박4일, 4박5일짜리 제주도·동남아·중국·일본 여행에 나서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올해엔 유럽, 미주 등 장거리 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이번 추석연휴의 최고 인기 코스는 단연 유럽이라고 여행사들은 입을 모은다. 주부 이모(41)씨는 “남편, 초등학교 1학년 딸과 함께 9월 30일부터 이탈리아 일주에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남편이 이번 여행을 위해 개천절 앞 뒤(2, 4일)로 이틀 휴가를 내기로 했다.
하나투어 측은 “과거 단체관광 대신에 자유여행, 배낭여행 등 개별 일정으로 떠나는 유럽 여행객이 크게 증가했고 같은 유럽이라도 좀더 특별한 지역을 고르는 추세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3~4일 정도 다녀올 수 있는 태국이나 홍콩, 상하이, 타이완, 세부, 도쿄, 제주도 등도 많이 몰리고 있다. 이런 단거리 여행상품은 가족여행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대기업 임원 K모(40)씨는 “10월 1일 필리핀 세부로 출발해 가족과 함께 4박 5일간 쉬었다 올 계획”이라며 “추석 전날 귀국할 수 있도록 멀지 않은 곳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징검다리 휴가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은 짧은 제주도 여행으로 돌리고 있다. 롯데관광 강준홍 부장은 “여행은 해야겠고 시간은 없고 그러다 보니 제주도나 갔다 오자는 생각으로 제주행 예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휴가 길어지면서 출국날짜도 둘로 갈리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미주 등 장기여행객들은 9월 말 출국자들이고 동남아 단기 여행객은 출발일이 9월 말과 10월 5일 전후로 나뉘어 몰리고 있다.
해외여행 수요가 늘어나자 여행상품 가격도 크게 치솟았다. 여행사 관계자들은 “항공사들이 장거리, 단거리 할 것 없이 좌석가격을 최고 성수기 수준으로 받고 있기 때문에 상품가격도 평상시보다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행상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비수기 때보다 30만~50만원 정도 더 부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