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남미의 아르헨티나에서 이민 40주년 기념식이 있었다. 남미 이민은 말하자면 40년이 되는 해외 축하연이었으나 40년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교민사회가 1세 주도에서 2세 주도로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교민 1세들은 남미의 경우도 그러하지만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도 한국이 어려운 시기에 조국을 떠났고 출국시 한 가족 당 1천 달러 밖에 가져갈 수 없게 하여 현지에 도착해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고 오히려 고생을 낙으로 삼고 일생을 살아 왔다. 1세의 낙의 하나는 2세들이 성장하는 것이었고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2세들이 잘 되는 것만을 바라셨다.
그러던 교민 사회가 40년이 경과하고 보니 2세들이 성장하여 1세들의 뒤를 잇게 되었다. 부모들의 희생이 컸던 것만큼이나 교민 2세들의 사회 진출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면 유명한 뉴욕이나 LA 등지에 한인 차세대들의 모임이 활발하여 대견스러울 정도이다. 이들은 물론 한국어가 서툴러서 모이면 영어로 대화를 하는 모습이 마치 미국인 청년들의 모임과 다를 것이 없다. ‘이들이 한국어를 구사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이들이 한국어를 못하니 미국인이 다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서글픈 일면도 없지 않다.
한인을 포함하여 이민을 간 사람이 조국을 떠나 제일 먼저 상실하는 것이 언어다. 말은 약 5년만 사용하지 않고 현지어만 사용하면 원래 언어를 상실하고 만다. 이민자들이 다음으로 상실하는 것이 의생활이고 다음이 주생활이다. 의생활은 자기의 민족의상을 입지 않는 것을 말하고 주생활이란 집안에 한국적인 장식품이나 그림을 두는 것으로 이것 역시 1세대가 지나면 없어진다.
이민자들에게 가장 오래 남는 것이 식생활이다. 음식은 집안에서 먹는 것이기에 외부에 노출이 되지 않고 무엇보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고 자라 보통 3세대와 4세대가 지나도 자기들의 민족음식은 계속 유지된다.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은 100년이 되는 이민사에 현재 3세, 4세들이 주류를 이루고 살며 언어, 문화 대부분을 상실하였으나 음식은 한국 것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어를 모르고 한국문화를 모른다 하면 그것이 코리안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코리안으로 남는다는 것은 한국계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갖느냐 하는 문제가 된다.
다행히 미국을 위시하여 한인들이 사는 나라가 대부분 다민족 국가인 것이 다행스럽다. 다민족 국가에서 여러 민족이 섞여 어울려 살기 때문에 자기의 근원을 숨길 수 없다. 말하자면 한인 2세들이 아무리 미국에서 미국인 행세를 해도 미국인들이 노란 얼굴의 한인들에게 ‘너의 조국은 어디인가’ 묻고 ‘한국어를 할 줄 아느냐’하고 묻는다.
따라서 우리 한인동포 2세들이 이러한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한국인의 후손으로 한국어를 배우려 하고 한국어를 할 줄 몰라도 한국인의 후손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후손으로 한국어를 알면 좋겠으나 말은 항시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려지는 것이다. 한국어를 못 한다고 한국적 자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귀화를 하되 성은 한국 성을 유지하면서 귀화를 한다. 예컨대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씨는 손씨 성을 유지하면서 귀화하여 한국계임을 표시한다. 그러나 한국어를 못하는 완전한 일본인이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다니는 3세, 4세들이 부모와 달리 자기의 본명을 되찾는 ‘본명 선언’을 한다. 그리고 한국문화를 배우고 한국계임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이민 후손이 5세, 6세가 지나면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인 후손이 몇 세가 되든 문제는 한국인의 후손이 자기 피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해 줄 것이 이것이고 후손들에게 바라는 것이 이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