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교육혁명’ 취재 중 현지의 한국인 유학생 가정을 찾았다. 고등학생·중학생 딸을 뒷바라지하고 있다는 주부 A(43)씨. 2년 전 유학 대행사를 통해 큰딸을 아일랜드의 사립학교에 먼저 보낸 뒤 작년에 작은딸과 함께 왔다.
A씨의 아파트를 보니 단정한 살림 솜씨가 눈에 띄었다. 대기업 부장 출신의 사업가 남편이 월 500만원씩 보내주지만 그는 “알뜰하게 챙기지 않으면 씀씀이를 걷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첫마디에 “영어와 국제 감각은 필수 아니냐”며 “아일랜드는 외국인 차별 없고 한국인이 적어 영어 공부에 좋다”고 말했다. 공정한 교사, ‘왕따’ 없는 교실, 실용적인 교육, 안정된 사회와 천혜의 자연…. 자기가 해외 유학을 감행한 이유를 쉬지 않고 열거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영어는 많이 늘었을까. A씨는 머뭇거리며 “영어의 바다에 빠진다고 영어가 저절로 되는 건 아니더라”고 말했다. 한국에선 몰랐던 재능이라도 찾았을까. 그는 코 끝이 빨개지더니 “죄송하다”며 티슈를 뽑았다. “아직도 겉도는 것 같아요. 큰딸은 뚜렷한 진학 계획도 못 세우고 작은딸은 ‘외롭다’며 당장 한국으로 보내달라 떼를 써요.”
3년쯤 영어 실력을 키워 영국이나 미국 명문대에 보내려던 계획이 불투명해졌다는 것이다. A씨는 “지금 한국에 돌아갈 수도 없고…. 애 아빠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라며 울먹였다. 한국의 가족·친지는 물론 같이 사는 자식에게도 속을 터놓지 못하고 사는 듯했다. “교육 정보에 꽤 밝은 편이었는데 여기 와 바보가 됐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공부 이야기를 꺼내면 아이들이 ‘엄마가 이곳에 대해 뭘 아느냐’고 하더군요.” 한국의 교육을 탈출했다가 갈 곳을 잃은 ‘기러기 가족’들이 A씨네뿐일까. 장밋빛으로 포장된 극소수 해외 유학 성공신화 이면엔 이들의 침묵이 ‘빙산의 나머지’처럼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