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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 칼럼> 그래도 창 밖은 꽃 피고 새 우는 환장할 봄날입니다
코리안위클리  2006/04/20, 01:44:54   

하나님이 깊은 밤에
피아노를 두드리시네.
건반 위에 춤추는
하얀 손은 보이지 않아도
섬돌에, 양철 지붕에, 그 소리만
동당 도드랑
이 밤에 하나님도 답답하셔서
잠 한 숨도 못 이루시네
(심훈의 시 ‘봄비’)


자주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그래서 벚꽃이 땅에 깔리고 또 예년보다 낮은 기온이 화사한 봄차림을 가로막습니다.
내리는 비에 떨어지는 꽃잎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치기어린 감상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들판의 아지랑이 같은 어떤 그리움이 갑자기 밀물처럼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옆구리의 허전함처럼 가끔씩 그리운 사람, 나눈 이야기 하나 없어도 끝없이 말을 걸고 싶은 사람, 차마 손이 떨려 전화도 못 걸고 아련함만 물결처럼 번지게 만든 사람이 문득 떠오른 것입니다.
사랑은 젊은이를 사로잡고 늙은이를 분별없이 만든다는데, 아, 그래도 창 밖은 꽃 피고 새 우는 환장할 봄날입니다.


창가에 서서
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다
편지를 씁니다
아쉬움이 남아있는 전화보다는
가슴속 깊은 곳에 피어나는
그리움이 묻어 있는
편지를 씁니다
망설이다가 씁니다
눈을 들면
짜릿한 설레임처럼
봄이 가슴으로 전해져옵니다
사랑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나의 시 ‘편지’)


봄기운에 몸도 마음도 새롭게 할 겸 그 동안 이곳저곳에 쌓아두었던 짐들을 정리했습니다. 꽤 오랫동안 책상 주변에 늘려있는 것들을 정리해보니, 처음에는 다시 볼 욕심에 주변에 두었는데 돌아보니 그 모든 것이 부질없는 욕심이었습니다.
오랜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없어도 불편함이 없었던 것이라면 앞으로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인가 봅니다. 한때는 끌어안고 있으면서 놓지 못했던 물건이나 관계들이 시간 앞에서 무력하게 의미가 퇴화되고 더 이상은 보관해야 할 가치도, 연결해야 할 의미도 없는 것으로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버리자니 아쉽고 가지고 있자니 귀찮은 물건들을 우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두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지금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과감히 버리고 혹시라도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나눌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계절이 바뀌면서 버려야할 것이 어디 물건뿐이겠습니까? 나의 낡은 자아에 먼지 가득한 자존심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입니다. 나를 향해 마음을 열고자 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도록 했던 적도 많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나이를 더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했던 나의 못난 자아들이 가시처럼 가까운 사람들을 아프게 찌르고 그 영혼의 실핏줄을 터뜨리는 일을 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던 화두는 ‘좀 더 열심히 많은 일을 이뤄보리라’는 열성에 찬 다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봄에는 좀 더 나를 죽이고 나를 버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의 빈 자아 속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이 스며들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와 아픔에 대해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나의 영혼에 여백을 두고 싶습니다.
내가 필요하지 않은 자리인 줄 알면서도 단지 나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혹시 다른 사람의 길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버리고 나면 더 편안하고 없이 살면 더 간편할 수 있는데 버리지 못함으로 해서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오직 나만이 해결책’이라는 무지만 교만에서 한 발자욱도 물러서지 않은 채 무거운 짐을 지고 헉헉거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나면 서로가 가볍고 경쾌한 걸음으로 함께 갈 수 있는데도 그 나눔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완성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시작입니다. 봄의 시작, 푸른 잔치가 막을 열려 하는 계절입니다. 해마다 봄엔 경건한 의식처럼 새롭게 열심히 사는 날들을 계획하곤 했는데 이 봄에는 좀 더 많이 나를 비워서 빈 곳에서 울려나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소리는 비어 있는 곳을 울리며 나오고 퉁소의 묵직한 저음 역시 빈 곳을 울려서 나는 소리가 아닌가? 내가 나의 욕심으로 나의 생각으로 꽉 차 있는 한, 남의 아픔의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며 미세한 음성으로 조용히 다가오는 하나님의 음성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나를 비우는 봄, 버릴 것을 버림으로 해서, 익숙한 곳에서 좀더 물러나 앉음으로 해서 새롭게 나를 바라보며 내 속에서 조용히 울려나는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아, 그래도 창 밖은 꽃 피고 새 우는 환장할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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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혁님은 아름다운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시인,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인간성으로서의 하나님>, 시집 <작은 꽃 한송이 되고 싶구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기쁨아 너를 부르면 슬픔이 왜 앞서 오느냐>,
<다시 사랑하고 싶다>와 칼럼집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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